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이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합병 찬반 여부를 결정했다. 다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오는 17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여부를 외부 민간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서 결정하면서 합병에 찬성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민연금은 이날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한 본부 실무진 12명이 참석해 투자위를 개최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신중하게 논의를 거쳐 결론을 냈다”면서 “세부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투자위에서 합병 찬반 여부를 결정한 것은 최근 SK와 SK C&C의 합병 때 반대 입장을 냈던 상황과는 다르다. 당시에는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해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국민연금공단이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결정하도록 만든 기구)에 결정을 위임했고, 전문위가 합병 비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전문위에 위임하지 말고 투자위가 독자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투자위가 독자 결정할 경우 합병 찬성, 전문위에 위임할 경우 합병 반대 결정이 날 것으로 본다. 주주가치 극대화에 보다 충실한 외부위원들보다는 투자위가 결정하면 국제 헤지펀드가 개입된 상황을 고려해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그동안 입장이 엇갈렸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민연금에 자문을 하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모두 현재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려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가장 강력한 반박 논리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로부터 삼성그룹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익론이다. 국민연금이 자칫 헤지펀드와 손을 잡았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주가 하락으로 국민연금이 손실을 볼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이번 건은 향후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으로서 국민연금의 역할론 논의와도 연결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시장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한 재무적 투자자로 남을지, 아니면 헤지펀드의 공격이 있을 때 대기업의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임시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참석 주주 3분의 2, 총 발행주식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주총 참석률을 70%로 가정하면 삼성 측이 확보해야 하는 지분은 47%가량이다. 현재 삼성 측의 확실한 우호지분은 삼성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 지분 13.82%와 KCC가 확보한 지분 5.96% 등 19.78% 정도다. 국내 기관투자가들과 주총에서 11.21%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국민연금이 찬성해야 합병 통과 시나리오에 힘이 실린다. 나머지는 소액주주들의 몫이다. 삼성물산과 엘리엇은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막판까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에 무게
입력 2015-07-11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