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끝난 159일간의 서울 시내면세점 레이스는 재벌 오너가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였다. HDC신라면세점은 삼성가(家)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현대가의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의기투합, 약점은 감추고 강점을 극대화하며 특허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이고 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전폭 지원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삼성과의 화학·방산 분야 ‘빅딜’에 이어 서비스업 부문에서도 신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세계그룹의 신세계디에프, 롯데면세점, 이랜드, SK네트웍스(워커힐), 현대백화점 등도 오너가 등이 사활을 걸고 지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HDC신라면세점은 탄생 시점부터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회장이 지난 1월 가장 먼저 서울 시내면세점 경쟁 참가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유통업에서의 낮은 인지도와 면세점 운영 경험 미비가 면세 사업자로서의 점수를 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사장과 손을 잡으면서 유력 후보로 단숨에 올라섰다. 이 사장 역시 정 회장과 함께하면서 태생적 한계인 독과점 논란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지난해 기준 호텔롯데의 국내 면세시장 점유율은 47%이고 호텔신라는 31%로 두 회사가 국내 면세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 사장은 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관광업이 타격을 입자 중국으로 건너가 관광객 유치 활동을 하고 곧이어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승부수를 잇따라 던지며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관광지로서는 다소 낯선 여의도를 후보지로 선택한 데다 유통 재벌인 신세계그룹과 현대백화점에 밀려 초반에 주목을 덜 받았다. 이후 한강 및 인근 지역과 연계한 한강유람선 프로그램, 노량진 수산시장 투어, 여의도 봄꽃 축제, 종합병원과 연계한 의료관광 등 새로운 콘텐츠를 적극 내세우며 미래 관광자원으로서의 여의도를 부각시켰다.
관광 중심지에서 다소 떨어진 용산과 여의도에 대기업 면세점이 들어서면서 서울 시내면세점 상권 역시 새로운 축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소공동 롯데면세점 본점과 장충동 호텔신라에 이어 용산과 여의도를 잇는 새로운 면세 상권이 주축 상권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오너 자존심 걸린 레이스… 허 찌른 승부수 통했다
입력 2015-07-11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