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호 법정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죠?” 10일 오전 9시4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동관 2층에서 이정훈(43)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간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안내데스크 직원을 찾았다. 오전 10시에 열리는 ‘교통약자 이동권 차별구제 소송’ 1심 선고공판을 보러 법원에 들른 길이었다. 이 간사는 “아침 일찍 장애인용 콜택시를 타고 왔다”며 “시내 이동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건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법원은 이씨를 비롯한 장애인, 노인·영유아 등 ‘교통약자’를 위해 고속·시외버스에 승하차 편의시설을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지영난)는 장애인 김모씨 등이 정부와 서울시·경기도, 금호고속·명성운수 등 버스회사 2곳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 요구를 법원이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금호고속은 시외버스에, 명성운수는 광역급행형 시내버스 등에 휠체어 승강 설비 등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며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정부와 지자체 등에 차체가 낮은 저상버스나 휠체어 승강 설비의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장애인 차별금지법상 차별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는 “절반의 승리”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민간 사업자는 이윤이 갈수록 떨어진다고 하소연하는데, 국가나 지자체 대신 민간 사업자에만 설치 책임을 묻는다면 교통약자에 대한 왜곡된 편견이 나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원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불쌍한 장애인들 도와주자’는 식으로, 마치 시혜를 내려주는 것처럼 다뤄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 현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거리가 멀다. 전국의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중에 저상버스는 한 대도 없다. 고속버스는 지난해 10월 기준 1905대, 시외버스는 7669대다. 전국 시내버스 3만3000여대 가운데 저상버스는 2013년 기준 5477대(16.4%)에 불과하다.
호주 연방법원은 2013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해 시드니∼캔버라 구간에 휠체어 탑승버스를 55% 비율로 도입하라”고 판결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7일 “미국, 영국은 모든 고속버스에 휠체어 승강 설비를 100% 설치했다”며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관계 법령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법원 “버스회사, 고속·시외버스에도 승하차시설 설치해야”… 장애인 등 교통약자 이동권 첫 인정
입력 2015-07-11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