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미술 재료가 새로워서 신선한 전시가 있다. 덴마크 출신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43)의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헨릭 빕스코브’전이다. 패션과 디자인, 사진 등으로 특화해온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미술 전공 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직물’을 주재료로 했다. 설치물, 프린트 기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천이 주는 물질성을 한껏 살린 경쾌하고 위트 넘치는 전시다.
빕스코브는 2003년 파리패션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발표한 이래 매년 형식을 파괴하는 패션쇼를 해 선풍적 화제를 모았다. 만화적인 모양과 실루엣의 가슴 조형물을 무수히 쌓아올려 에덴동산을 연출한 ‘빅 웨스트 샤이니 부비즈, 2007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사진,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순수 예술 영역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뉴욕현대미술관, 파리 팔레 드 도쿄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다.
‘멀티 크리에이터’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의 전시에서 관람객을 가장 사로잡는 건 천이라는 재질이 주는 느낌일 것이다. 직물 특유의 부드럽고 안온한 분위기가 전시장 전체를 관통한다. 음악성까지 더해져 ‘천들의 유쾌한 하모니’를 듣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조차 심각하지 않고 위트 있다. 민트를 소재로 한 4층 전시공간이 특히 그렇다. ‘민트 인스티튜트 2008 가을·겨울 컬렉션’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패션쇼에서 선보인 걸 작품화했다. 방에 들어서면 민트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천장에 가득 매달린 민트색 막대풍선 구조물이 배경의 검은색과 대비돼 시각적으로 스펙터클하다. 막대풍선들은 위장 속의 융털처럼 부드럽고 집단적으로 보여 고정물인데도 유동하는 듯하다.
작가는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민트 색상을 보며 여기에 음악이 있다면, 이것에 캐릭터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민트 색상에서 발현된 아이디어로 창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층에는 플라밍고 새의 목을 거꾸로 길게 늘어뜨린 걸 형상화한 검은색 설치물이 있다. 푸줏간에 매달린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키지만 무겁지 않다. 그는 “과테말라에서 도살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관습과 달리 죽음을 아름답게 기념하는걸 보고 착안하게 됐다”고 했다. 2층 작은 방에는 노란색과 흰색으로 바람개비처럼 만든 커다란 회전체 작품 ‘멈스파이럴(M’umspiral·사진)이 공간을 장악하듯 설치돼 있다. 작품에서 오는 운동감과 음악성으로 인해 작은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이밖에 다양한 작품이 있지만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 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가슴 조형물 설치물일 것이다. 패션쇼 백 스테이지의 분주함을 수백 개 가슴 조형물을 쌓아 형상화했다. 실내 전시장이 좁아 설치하지 못한 작품들은 SNS를 통해 야외에 기습 전시된다. 입장료는 5000원이며 전시는 연말까지(02-720-0667).
손영옥 선임기자
패션 너머의 패션 경계의 예술을 만난다… ‘멀티 크리에이터’ 헨릭 빕스코브 전시
입력 2015-07-13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