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박노해

입력 2015-07-11 00:12

고유명사 ‘박노해’는 한동안 금기어였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낸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던 그가 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결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자 세상은 경악했다. 사노맹이 어떤 단체인가. 전국 주요 도시에 조직을 두고 노동자 계급의 전위정당 건설을 목표로 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조직 아닌가. 공안통치가 주효하던 군사정권 시절 스스로 ‘사회주의’ 신봉자임을 공표한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오랜 수배 끝에 91년 체포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7년6개월 만인 98년 김대중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후 지금까지 반전평화활동에 전념한다. 사회주의와는 이미 결별했다. 93년 감옥에서 사회주의 붕괴를 맞이한 그는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지켜져야 하지만 현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됐다’며 성찰했다. 세상에 나온 그의 한 손에는 시를 쓰는 만년필이, 또 다른 손에는 흑백 필름이 담긴 카메라가 들려져 있다. 박노해는 사진을 인류 보편의 언어인 ‘빛으로 쓴 시’라고 표현했다.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를 시작으로 8번 전시회를 가졌다. 작년 2월 세종문화회관서 열린 ‘다른 길’에는 27일간 3만5000여명이 찾는 성황을 이뤘다. 그의 셔터가 머무는 곳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빈곤과 분쟁의 현장이었다.

지난 주말 모처럼 서울 성곽길 인왕산 코스를 갔다가 부암동의 ‘라 갤러리’를 찾았다. 박노해 사진전 ‘태양 아래 그들처럼’이 열리는 곳이었다. 부암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환기미술관 쪽으로 야트막한 오르막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왼쪽에 있다. 이번에 그의 눈길이 멈춘 곳은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땅 ‘알 자지라’였다. ‘섬’이란 뜻의 이곳 사람들의 삶과 자연을 흑백의 색으로 담았다. 최초의 농경시대를 열었으며 바퀴와 문자를 발명해 문명시대를 시작했던 시원(始原)의 땅이 세계 분쟁의 중심지로 바뀐 현실을 24점의 사진에 나타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전시회는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주말과 공휴일, 잠시 짬을 내 들러보면 어떨까. 입장료는 없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