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서울 여의도의 한 아파트 상가 뒤편에 길고양이가 나타났다. 주민들은 황토색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이 고양이를 ‘할미’ 고양이라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끼도 낳고 친구도 데려와 이 동네 길고양이는 8마리까지 늘어났다. 상가에 있던 쥐는 자취를 감췄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데리고 놀았고 어른들은 먹이를 줬다. 고양이들을 위해 상인들은 겨울마다 상가 구석에 ‘바람막이’도 만들어줬다. ‘아재’ ‘고돌이’ 등 고양이마다 이름도 붙였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고양이가 한 마리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물보호운동가를 자처한 A씨(45·여)가 상가 주변에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A씨는 항상 검은 옷을 입고, 잠자리채 모양의 커다란 포획망과 배낭을 메고 다녔다고 한다. 상가 곳곳에 길이 1m가 넘는 포획틀도 설치했다. 한 주민은 “A씨가 중성화시킨다는 핑계로 고양이를 데려갔다가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많았다”며 “설치해놓은 포획틀을 발로 밀었더니 왜 남의 물건을 밀치느냐고 해서 다툰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차츰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면서 겁이 많아 ‘겁순이’로 불리는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았다. 지난 5월 말 겁순이는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지난 4일 겁순이의 새끼를 발견한 A씨가 한 마리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갔다. 주민들은 겁순이가 남은 새끼를 데리고 구슬프게 울며 하루 종일 상가 주변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A씨는 다음날 “어미가 없어서 새끼가 먹지를 않는다”며 겁순이마저 데리러 왔다. 보다 못한 경비원이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고민에 빠졌다. 주인 없는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간 것이 과연 ‘죄’인지 의문이 들었다. A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어차피 소유권이 없는 동물이라 데려가도 상관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법상 소유권이 없는 동물을 데려가는 것은 위법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번 경우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관리’를 했기 때문에 ‘점유권’ 개념이 성립할 수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A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지금까지 최소 3차례 이상 상가 주변 길고양이를 포획했다. 경찰 관계자는 “출동했더니 A씨의 집은 사람이 들어갈 틈도 없이 고양이 16마리로 가득 차 있었다. 동물보호운동가인지도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A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손길이 닿지 않는 배관로 등에 있는 고양이가 위험해 보였다”며 “입양해 키우는 게 고양이를 위해 훨씬 좋다. 왜 굳이 길가에서 길러야 하느냐”고 말했다.박세환 조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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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국민일보는 7월 10일자 13면 ‘동네주민 사랑받던 길고양이 데려가면…절도 혐의 유죄? 무죄?’ 기사에서 동물보호운동가를 자처한 A씨가 4~5년 전부터 곳곳에 포획틀을 설치하고 고양이를 잡아 집으로 데려가 불구속 입건됐다고 보도했습니다. A씨는 검찰 조사 결과 이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혀왔습니다. 또 A씨는 “고양이 포획을 시도한 건 2년에 걸쳐 2차례였고 중성화를 위한 조치였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동네주민 사랑받던 길고양이 데려가면… 절도 혐의 유죄? 무죄?
입력 2015-07-10 02:38 수정 2015-07-10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