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더 높은 임금, 더 낮은 세금, 더 낮은 복지’를 실현할 예산 계획을 발표했다. 복지 지출 삭감은 지난 5월 총선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중점 목표였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최근 그리스 경제 위기를 본보기로 삼아 복지예산 과다지출로 인해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영국 BBC방송 등은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이 8일(현지시간) 하원에서 2020년까지 120억 파운드(약 21조200억원)에 달하는 복지 지출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오스본 장관은 예산 계획을 밝히면서 “그리스에서 전개되는 위기 상황을 보라. 국가가 빚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빚이 국가를 통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영국은 아직도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은 돈을 꾸고 있다”면서 “이번 예산은 경제안보를 최우선으로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머런 총리도 지난달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번 돈을 세금으로 내고, 정부는 다시 이 돈을 이들에게 더 많은 복지와 함께 돌려주는 ‘터무니없는 회전목마’를 끝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영국 정부예산에서 복지예산은 30%가량을 차지한다.
영국 정부는 정부부처 예산 축소와 탈세 근절 등을 통해 앞으로 5년간 370억 파운드(약 64조5200억원)의 예산을 절감하고 재정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계획이다. 영국 재무부는 이 같은 노력으로 매년 2.5%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를 줄이는 대신 최저임금 수준은 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내년 4월 생활임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생활임금은 물가를 반영해 근로자와 그 가족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으로 기존의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됐다.
오스본 장관은 25세 이상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시간당 7.7파운드(약 1만3430원)에 맞추고 2020년까지 9파운드(1만5730원)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로 영국 근로자 60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25세 이하 근로자 채용을 늘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영국의 최저임금은 21세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시간당 6.5파운드(약 1만1330원)다.
세금부담을 낮추기 위해 내년부터 소득세 면제를 받는 최저 연봉의 상한선도 1만1000파운드(약 1918만원)로 상향 조정한다. 현재 20%인 법인세율은 2017년 19%, 2020년 18%로 단계적으로 인하할 예정이다. 반면 100만 파운드(약 17억4600만원) 이상의 상속금에 대한 세금은 인상된다.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유지된다.
오스본 장관의 복지지출 삭감 계획에 일부 시민은 이날 런던 시내에서 바닥에 누워 다이인(Die-in) 시위를 벌이며 항의를 표시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복지 깎되 생활임금 도입”… 영국의 실험
입력 2015-07-10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