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합의를 앞으로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안호영)“양국이 합의를 이룬 것 자체가 중요하다.”(사사에 겐이치로)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와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설전을 벌였다.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주최한 ‘대사들의 대화’ 세미나에서였다. 재단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난 4월 방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10월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한·미·일 3각 안보와 동맹의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양국 대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강제노역을 인정했다가 얼버무리고 있는 일본 정부와,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촉구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충돌했다.
사사에 대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일 간 합의를 통해 일본 문화유산을 등재한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것들은 사소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과 한국이 협의를 하고 합의를 이뤄냈다는 것”이라며 “너무 구체적인 자구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독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과거 일부 산업시설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던 일이 있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 ‘강제 노역을 인정할 경우 배상 책임이 따를 것’이라는 반발이 생기자 일본 정부가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는 문구의 해석을 달리해 논란이 빚어졌다.
사사에 대사의 발언은 이런 논란을 의식해 합의 자체만 부각시키고 내용과 후속조치에 쏠리는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이에 안호영 대사는 “양국이 합의한 것을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안 대사는 “모든 것이 문안으로 나와 있다”며 “유네스코도 일본이 합의한 것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합의한 정신을 잘 살려 양국 관계 정상화의 좋은 모멘텀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 대사의 발언은 한·일 간 합의를 바탕으로 강제노역이 반영된 수정안이 위원국 전원의 컨센서스로 통과된 만큼 이를 토대로 강제노역 인정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를 이행하라는 주문이다.
두 사람은 2012년 3월 각각 양국의 외무차관으로 위안부 할머니 보상 문제를 놓고 교섭을 벌였으나 합의를 보지 못하고 등을 돌린 적이 있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동아태 부차관보도 세미나에 참석해 두 대사의 설전을 지켜봤다. 성김 부차관보는 “북한이 진정성 있는 핵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도 “현 시점에선 제재 이행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일본 세계유산 관련 韓·日 대사 워싱턴서 충돌] “합의 이행이 중요” VS “합의 자체가 중요”
입력 2015-07-10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