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공예품점. 나무로 짠 진열대에 색색의 노리개가 다소곳이 걸려 있었다. 솟대를 형상화한 금속공예품도 눈에 띄었다. 모두 우리나라 공예작가가 직접 만든 작품이다. 현대공예품부터 고미술품까지 고루 갖춘 이곳은 1924년 문을 연 인사동의 대표 공예품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하는 ‘국가인증우수쇼핑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은 모두 내국인이다. 주말을 맞아 인사동 거리를 메운 외국인 관광객들은 좌판에 널린 조악한 기념품만 구경할 뿐이었다.
국가인증우수쇼핑점은 좋은 제품을 적정가격에 파는 상점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알리기 위해 2010년 도입됐다. 상품 다양성, 매장 환경, 가격 적정성, 종사원의 외국어능력, 주차 공간 확보 여부 등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지정한다. 전국에 1165곳이 지정돼 있다. 관광공사는 인증업체 입구에 푯말을 붙이고 항공기내 잡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광고한다. 관광안내센터·관광호텔 등에도 홍보책자를 비치해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우수쇼핑점 정보를 알고 일부러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이날 오후 돌아본 인사동의 우수쇼핑점 4곳에서 외국인 관광객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길에서 마주친 외국인 관광객들은 물론 관광안내원, 통역사 등도 우수쇼핑점이 뭐하는 곳인지 몰랐다. 우수쇼핑점을 지정하는 관광공사와 해당 상점 주인만 알고 있을 뿐이다.
호주에서 온 안젤라(56·여)씨에게 우수쇼핑점 로고를 보여주니 “처음 본다. 기내 잡지는 복잡해서 광고 효과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인 피터(62)씨는 “가게마다 파는 물건이 다 ‘메이드인 차이나’인데 국가인증매장에는 ‘메이드인 코리아’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수쇼핑점 로고를 처음 본다. 아무 정보도 담고 있지 않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인사동 홍보관의 통역사 오경숙(61·여)씨는 “재작년 겨울쯤 상인들에게 우수쇼핑점 인증을 받으라고 신청서를 나눠줬다”며 “지난해와 올해에는 브로슈어나 안내지도를 못 받았는데 아직도 인증업체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다른 통역사도 “관광안내소에서 일한 지 10년 됐지만 이런 제도는 처음 들어 본다”고 했다.
상인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 이모(60·여)씨는 “우수쇼핑점이라고 찾아온 사람은 기자가 처음”이라며 “관광공사 사람들이 가격정찰제를 하는지, 통역은 되는지 확인하고 갔을 뿐이다. 따로 관리받거나 홍보해준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칠보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45·여)씨도 “관광객들이 우수쇼핑점 로고 자체를 모른다”고 말했다. 한 다예공방 관계자는 “딱 한번 일본 관광객이 우수쇼핑점이 표시된 가이드북을 들고 온 적이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우수쇼핑점 1165곳의 89%에 해당하는 1034곳은 대기업이나 외국계 유명 브랜드 계열점포여서 다양성을 찾기 어렵다. 하이마트 390곳, 홈플러스 105곳, 이마트 130곳, 롯데마트 98곳, 전자랜드 64곳 등 전체 우수쇼핑점의 67%는 대형마트와 전자제품점이다. 롯데 계열만 535곳으로 46%를 차지한다. ‘2014 우수쇼핑점 신규인증 심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인증된 162개 매장의 80%가 대기업 계열이었다. 소형 매장도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 등이 운영하는 화장품 프랜차이즈 점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판매 품목에 한계가 생긴다. 관광공사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우수쇼핑점 가운데 전통공예품 매장이 적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개선되지 않고 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초창기에 인지도가 떨어져 신청이 저조했고 인증 점포 수를 늘리기 위해 대형마트 위주로 신청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중소상공인은 매장 운영이 바빠 인증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중소매장 참여를 독려하려면 홍보에 더 투자해야 하는데 예산 6억여원 중 홍보예산은 2억1000여만원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경숙 한국관광학회장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 업체는 홍보해주지 않아도 외국인이 다 알고 있다”며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중소업체나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공방을 인증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전수민 고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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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정해 놓고 나몰라라… 관광공사만 아는 ‘우수쇼핑점’
입력 2015-07-10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