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의의 저수지. 우리가 이 은혜를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 이매뉴얼교회의 총기 난사 피해자 추모식에서 열린 생각과 마음이 흑백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라면서 이를 ‘선의의 저수지’에 비유했다. 열린 생각과 마음은 우리말 ‘관용(寬容)’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앞서 이매뉴얼교회 성도들은 가해자를 하나님 이름으로 용서했다.
지난달 한인 여학생의 대학 합격증 위조 논란이 있었던 미 토머스제퍼슨과학고의 교장은 “잘못의 후과를 수용하고 교훈을 얻은 뒤에는 학생이 용서받길 바란다. 학교는 ‘회복적 정의’를 통해 학생 교육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한 사회의 높은 ‘관용 지수’를 보여준다. 우리는 최근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과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서 여러 가지 상반된 장면을 목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여당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는 선사 소유주가 숨지고 선장이 수감되는 ‘징계’가 있었지만, 유족들의 아픔과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이재영 원장은 10일 “가해자 처벌이라는 ‘응보적 정의’에는 한계가 있다”며 “성경에 근거해 피해를 회복하고 공동체 역할을 강화하는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자”고 제안했다.
왜 우리는 서로를 관용하지 못하는가
미국 매노나이트파 기독교인들이 처음 주창한 회복적 정의는 발생 피해와 관계의 회복에 초점을 둔다. 타인을 용서한다는 점에서 ‘관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박명호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월 ‘지표를 활용한 한국의 경제사회발전 연구’ 논문에서 한국의 관용 지수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3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1위로 가장 낮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관용 지수가 낮은 것은 우리가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임성빈 장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방식 때문에 타인을 인정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않는다”며 “일반인은 집단을 중시하는 신유교 문화, 크리스천은 바리새인의 율법주의 경향이 그 배후”라고 분석했다.
관용을 사회적 미덕으로 합의할 계기를 갖지 못한 측면도 있다. 관용을 뜻하는 프랑스어 ‘톨레랑스(Tolerance)’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 신·구교도 간 무자비한 살육전에서 유래한다. 이후 상호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다. 톨레랑스는 점차 정치 사회 문화 등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원리로 확대됐다. 기독교 역사 발전에 기반하는 셈이다. 한국은 이념 대결에 따른 남북 분단이 지속되고 있다. 화해와 타협의 경험이 별로 없다. 단시간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룬 압축적 근대화로 사회 전반이 경쟁적이다. 다수가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고 느낀다.
임 교수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배려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자기중심성’ 곧 죄의 특징”이라며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은 새 피조물로서 평화와 화해를 이뤄가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은 야구 경기를 예로 들었다. 은 명예총장은 “야구 경기 중 관중석에 공이 떨어지면 한국인들은 공을 주우려고 몸싸움을 하고, 미국인은 공을 주워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꼭 건네준다. 아주 작은 예이지만 우리는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을 최소한의 사랑과 배려로 채우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공간을 이기주의로 오염시키고, 모든 잘못을 ‘네 탓’으로 돌린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회복적 정의 운동을 시작한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의 서부센터를 지난 2일 찾았다. 경기도 부천 상동역 인근 사무실은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정진 서부센터 소장은 “세월호 침몰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대형 참사 피해자들이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인정하고 치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복적 정의 개념은 사법적으로는 1974년 캐나다 청소년 범죄 해결에 처음 도입, 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과거사 청산에 적용됐다. 한국평화교육훈련원은 2001년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의 한 부서로 출발, 2011년 독립해 회복적 정의에 따른 화해와 조정 전문가를 양성해왔다. 훈련원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회복적정의협회(KARJ) 회원은 280여명이고, 강좌 수강자는 500명을 넘어선다.
너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회복적 정의 운동은 내면 깊숙이 자리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게 한다. 훈련원에는 회복적 정의에 따라 용서와 화해가 일어난 수많은 사례가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새날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한 정 소장은 관용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확증하라는 말씀(마 18:15∼16)이 있지 않나. 여기 ‘한두 사람’이 회복적 대화모임의 진행자다. 진행자가 경청 공감 사랑을 공동체에서 이끌어낸다.” 한국평화훈련원은 경기도 남양주 광주 부천 등에서 회복적 학교, 마을, 도시를 세워가는 공동체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기도 광주 퇴촌 마을은 2013년 9월 발생한 청소년 폭행 사건을 계기로 마을공동체 회복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광수중 학생 4명이 집단 폭력 사건으로 강제전학 등 징계를 당할 상황에 놓였다. 훈련원의 교육을 받고 있던 마을 어른들은 폭력이 대물림되는 공동체문화가 문제라고 느꼈다. 장재근 교장은 교육청에 “회복적 생활교육을 시키겠다. 내가 책임질 테니 아이들을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마을 이장, 공부방 교사, 학부모 등 20여명이 학생들을 위해 두 달가량 미술수업 인문학강좌 축구교실 등을 열었다. 아이들은 전학 대신 봉사를 했고, 피해 학생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했다. 학생들은 어른들에게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줘 감사하다”고 했다. 장 교장은 8일 전화통화에서 “강제 전학된 아이들은 결국 학교 밖으로 밀려난다. 폭력 학생도 학교에서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 당시 진행된 프로그램을 계기로 우리 학교는 축구단까지 창단됐다”고 전했다. 공동체의 헌신과 사랑이 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은 명예총장은 “한국교회는 우리만의 ‘신앙놀이’를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받은 이들을 모두 긍정하고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자. 나와 너 사이를 선의와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이 ‘영적인 공간’을 가정에서 시작해 교회, 학교, 직장, 국가로까지 넓혀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천=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뉴스&이슈] 관용… 평화·화해 이뤄가야 할 크리스천 숭고한 덕목
입력 2015-07-11 00:08 수정 2015-07-11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