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나침반] 메르스 첫 진단 공로 누가 알아줄까

입력 2015-07-13 02:29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주차장 옥상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별도로 진료하는 선별진료소가 설치돼 있다. 국민일보DB
최근 한 달 전부터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에서야 내원한 50대 여성 환자를 진료했다. 환자 본인의 표현으로는 마치 죽을 것처럼 힘들었지만 메르스 때문에 병원 진료를 미뤄왔다고 한다. 진찰 결과, 해당 환자는 심근경색이 발생한 후 2차적으로 판막증과 심부전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의사로서 매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메르스’라는 질병을 알게 된 지난 두 달 동안 우리의 생활 모습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외부 활동을 기피하면서 위 사례처럼 건강상의 불편함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는 경향도 생겼다.

메르스는 증상이 없는 경우 감염력이 없으며, 사망률도 처음 알려졌던 만큼 높지 않다. 또한 감염도 지역 사회 감염이 아닌 폐쇄공간에서의 근접 노출에 의해 발생한다.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도 메르스 감염을 이유로 학교를 폐쇄하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스’라는 감염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심리적 불안과 공포는 상당히 커졌으며, 이로 인해 경기 침체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다.

의료인으로서 메르스로 인한 피해 중 가장 염려 되는 것은 ‘무조건적인 의료 기피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 한 달 여 동안 병원 응급실마저 한산했으며, 수술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치료가 급한 환자뿐만 아니라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 중 상당수가 병·의원 방문을 기피하면서 진찰을 미루거나 치료제를 처방 받지 않았다.

메르스 감염으로 인해 사망, 입원 등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상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만성질환 환자들에게서 치료 상에 공백이 생길 경우 장기적으로는 합병증 등으로 인해 수명뿐 아니라 노후의 삶의 질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만성질환 환자들 가운데 평소 다니던 메르스 관련된 의료 기관을 방문하기가 어렵게 된 경우라면 타 의료 기관에서 한시적이지만 검사 없이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를 통해서라도 만성 질환 관리에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간호사 두 명과 의사 한 명의 메르스 감염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들로, 더욱 안타까운 점은 메르스 감염과 관련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과 그 가족들이 외면당하고 차별 받는 사례가 빈번해 졌다는 점이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적절한 수액 공급과 혈압 유지, 호흡 관리를 통해 급성기를 잘 넘기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치료제가 없으니 치료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거나 시중에 떠도는 근거 없는 치료법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메르스 감염 환자를 돌보고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의료진과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그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기 바란다.

사실 메르스 감염의 첫 진단을 내린 의료인이 누구인지 또한 이를 확인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진단이 며칠이라도 더 늦어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피해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질환을 의심하고 처음 진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지식 습득과 임상적 노련함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힘들어도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노고가 많은 이들로부터 제대로 평가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르스 감염 환자 치료와 확산 차단을 위해 보이지 않게 애쓰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동료 의료인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한경일 서울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