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아버지와 악수하기

입력 2015-07-10 00:10

타국에 살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동생과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식당에 도착해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버지가 나타나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나는 웃으면서 아버지 손을 마주 잡았지만, 왠지 불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요즘 젊은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매우 살갑게 군다. 아이들을 돌보고 놀아주고 때로는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해줘야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말을 듣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그 옛날의 아버지들은 늘 근엄하다 못해 무뚝뚝했고 심지어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렸을 때 골목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다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아버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상황 같아서 과자나 사탕이라도 사 달라고 조를 요량으로 아버지 팔에 힘껏 매달렸다가 아버지가 너무 매정하게 뿌리치는 바람에 무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식당 앞에서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그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쟤는 정말로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밥을 먹다가 아버지가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열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돌아가셨는데, 나는 이따금 열세 살 소년인 아버지가 당신 아버지의 뼛가루를 담은 상자를 가슴에 안고 기차에 앉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아버지는 남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당신이 손해를 보는 편인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동생은 아버지를 안으면서 말했다. “아빠, 왜 이렇게 말랐어요. 기름진 음식 먹고 살 좀 찌세요.” 나는 그저 웃으면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가 저 사람을 훨씬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부희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