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나리오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합병과 관련, 법원의 판단은 삼성 측에 유리하지만 국내외 유력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의견은 불리하다. 일부에서는 단순한 투자수익 변수 외에 국가경제 등 거시적 관점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야말로 고차방정식이다.
삼성은 실질적인 표 대결에서 의결권 자문기관을 설득하는 데는 애를 먹고 있다. 다만 단일 주주로는 11.21%의 최대 의결권 보유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이번 사안이 국가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주장대로 산술적인 경제논리를 따라가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기업지배구조원, “합병 비율,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의결권 자문기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최근 국민연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법적으로는 정당하지만 삼성물산 주가가 낮고 제일모직의 주가가 높은 시점에 합병이 결정된 것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지배구조원은 미국의 의결권 자문기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함께 국민연금이 이번 합병과 관련해 자문을 받는 곳이다. 2곳 모두 합병 비율을 문제 삼으며 반대 의견을 제시해 국민연금의 합병 반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다만 자문기관 의견은 구속력이 없다. 합병 비율 문제로 논란이 됐던 SK와 SK C&C의 합병에서 ISS와 기업지배구조원은 찬성 의견을 냈지만 국민연금은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논의를 거쳐 합병에 반대했다. SK 사례처럼 국민연금이 단순한 투자자 입장으로만 이번 사안을 판단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많다. 이번 사안이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아 투자 이익만을 중시하는 헤지펀드 엘리엇의 편을 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럴 경우 해외 투기자본들에 국내 기업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점도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주총 1주일 앞두고 치열한 신경전=오는 17일 열리는 임시주총을 앞두고 삼성 측은 지난주 합병 반대 의견을 낸 ISS 보고서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있다.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이날 오전 삼성 사장단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ISS의 내용이 합리성,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에 주목한다”며 “평가 업체의 신뢰가 떨어진 만큼 앞으로 그 서비스를 계속 써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가 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국민연금이 찬성해주면 합병 성공을 확신한다”고 답변했다. 엘리엇은 삼성 측을 강도 높게 몰아세웠다. 엘리엇은 이날 ‘삼성물산 모든 주주들께 보내는 서신’에서 “최근 삼성이 발표한 배당 성향 상향과 별도의 지배구조위원회 설립안은 주주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의미 없는 노력”이라고 깎아내렸다.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 무산 가능성을 높게 보는 한화투자증권은 지난달 15일에 이어 재차 같은 입장의 보고서를 냈다. 한화투자증권 이상원 연구원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합병 비율이고, 합병 비율 산정의 적법성이나 도덕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합병 기준가 5만5000원이 적정 가치 대비 낮은 수준이어서 삼성물산 주주들은 이번 합병이 무산되고 재추진되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갈수록 ‘고차 방정식’
입력 2015-07-09 03:59 수정 2015-07-09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