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에 대해선 ‘소신 정치인’, ‘유아독존형’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유수호 전 의원) 밑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주류 경제학자이면서도 부자·대기업 증세, ‘중(中)부담·중(中)복지’를 지향하는 보수 정치인이다.
유 의원은 ‘원조 친박’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사람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시절 이 전 총재에게 발탁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유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이때 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비례대표 초선에게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기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때 인연을 계기로 유 의원은 ‘원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이후 2005년 10월 유 의원은 대구 동을 재선거에 출마했다. 박 대표는 유 의원 당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후 유 의원은 이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하며 TK(대구·경북)의 맹주로 부상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유 의원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으로 뛰었다. 이명박 당시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등을 집중 파헤치면서 ‘이명박 저격수’를 자임했다.
박 대통령과 유 의원 사이는 2009년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완전히 손을 놓지는 않았다.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었던 유 의원은 ‘선관위 디도스 사태’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이는 지도부 총사퇴로 이어졌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등장하는 발판이 됐다. 박 비대위원장은 2012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여세를 몰아 그해 대선도 거머쥐었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을 돕는 중에도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박 비대위원장 주도로 한나라당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을 때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월 원내대표 취임 후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면서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를 콕 찍을 순 없지만 사소한 대립들이 쌓여 결국 멀어졌다는 게 여권 내 해석이다.
박 대통령과 유 의원 모두 소신을 굽히지 않는 원칙주의자여서 결국 정적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3년 정권 뜻을 거스르는 법관들을 무더기 면직시켰는데, 이때 유 의원의 부친 유 전 의원이 법복을 벗었던 ‘악연’이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관련기사 보기]
[유승민 사퇴] 소신과 직언 사이… ‘원박’서 ‘반박’으로 틀어졌다
입력 2015-07-09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