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논의 1년, 문제 없나] 법조계서만 뜨거운 담론… 法·檢·辯 ‘동상이몽’

입력 2015-07-09 02:50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상고법원 신설 문제가 뜨겁게 논의되는 곳은 ‘서초동 법조타운’이다. ‘법조 3륜’이라 불리는 법원과 검찰, 변호사단체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대법원은 사회적·법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대법관들이 제때 충실히 심리하려면 상고법원 설치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일부 변호사단체는 대법관 증원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검찰·법무부는 상고심 개편과 관련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각각의 논리와 주장 이면에는 나름의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다.

◇대법원의 헌법재판소 견제?=대법원의 상고법원 추진 이면에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견제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988년에야 구성된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간통죄 등의 사건에서 굵직한 결정을 내리며 위상을 높여 왔다. 특히 헌재가 지난해 말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던 장면은 두 사법기관의 위상에 지각변동이 감지된 순간이었다. 헌재의 이 결정은 대법원의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사건 판결보다 한 발 앞서서 내려졌다.

대법원의 위기의식은 상고법원 설치로 귀결된다. 일반 3심 재판은 상고법원에 맡기고, 대법관들은 사회적·법리적으로 의미 있는 중요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며 정책법원으로서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상고법원 설치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날은 헌재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린 날이었다.

대법원의 고민은 상고심 개선의 대안 중 하나로 꼽히는 대법관 증원을 반대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모여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는 ‘전원합의체’ 결정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대법관 증원을 반대하고 있다.

대법원의 위상 하락도 염두에 두고 대법관 증원을 반대한다는 해석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8일 “대법관 수를 늘리게 되면 그만큼 대법관 1명이 갖는 위상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며 “여기에는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재에 대한 견제의식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독일처럼 연방헌법재판소가 최고법원의 권위를 갖고, 128명의 대법관은 일반 권리구제 사건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구조를 대법원이 달가워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상고법원을 설치하면 고위직 법관 자리가 늘어 판사 인사적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대법원의 셈법에 들어 있다.

◇검찰·법무부 ‘유보적’…변호사단체 ‘이해 따라 제각각’=검찰은 상고법원 설치에 찬성이나 반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법무부는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서 “상고법원이 사실상 4심제로 운영될 우려가 있고, 상고법원 사건분류와 특별상고 요건 심사도 새로운 업무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법무부는 형사사건이나 국가상대 소송의 당사자로 직접 상고심과 관련돼 있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검찰은 그에 대응하는 조직을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간부들 사이에서 법무부를 통한 정부입법 형태로 상고심 개편안 논의가 진행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법무부와의 논의 없이 대법원이 주도하는 의원입법 형식에 사뭇 불편한 기색이다.

변호사 단체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최대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한다. 국민 대부분이 대법관의 재판을 받지 못해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논리다. 대한변협은 대안으로 대법관 증원을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변호사 몫의 대법관 자리를 늘리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면 지방변호사회 중 최대 규모인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찬성한다. 서울은 상고법원 설치가 가장 유력한 지역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사건 수임이 수월한 서울지역 변호사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고법원 설치안에는 심리불속행(상고대상 사건이 아닌 경우 심리 없이 기각) 제도를 없애는 방안까지 포함돼 있다. 변호사들이 아무런 설명도 기재돼 있지 않은 상고기각 판결문을 의뢰인에게 전달해야 할 부담도 덜게 됐다.

이와 달리 부산·울산·경남·광주 등 일부 지방변호사회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울에 설치될 상고법원을 지방에도 분산 설치토록 압박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전지방변회는 “상고법원은 행정도시인 세종시에 설치되는 것이 옳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