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대조적 장면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입력 2015-07-10 02:16
프랑스의 31세 동갑내기 두 작가가 함께 그렸다. 올해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픽션 부문 라가치상 대상 수상작이다. 글자 하나 없이 그림으로만 이어져 있다. 그것도 전과 후의 대조적인 두 장면을 연결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 독특한 그림책이다.

원제는 전후(Before After). 여성잡지에서 집안 개조의 전후, 얼굴 성형의 전후를 보여주는 데 쓰인다. 은근히 전은 나쁘거나 열등한 것이라는 개념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전과 후는 그런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니며, 서로 순환하는 개념이다. 시간의 흐름, 자연의 순리, 과학의 발전까지를 아우르는 심오한 세계를 담았다.

도토리 한 개와 아름드리 참나무. 각각 한 페이지에 전과 후로 대비되어 있는 두 장면 사에는 수 백 년의 세월이 가로 놓여 있다. 도토리 한 개에서 싹이 터서 자라고, 겨울이 되어 잎이 떨어지고, 이듬해 봄 또 싹이 나고…. 누군가는 물을 주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그 그늘에서 쉬어 가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함축한 대조적인 두 장면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무수히 이어진다. 탐스런 사과는 어느새 농익어 벌레가 먹었고, 나무에 오종종 열린 커피콩은 이어지는 페이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에 담겨 있다.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정갈한 집 마당의 그네는 다음 장면에선 끈이 끊어진 채 폐가에 뒹굴고 있다. 이 집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상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많은 부분을 생태계의 순환구조에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의 형식도 순환적이다. 밤하늘의 달이 해로 바뀌는 장면에서 시작한 그림책은 마지막에 해가 달로 바뀌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