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우리나라 대표적 구필화가 박정 집사 “입으로 붓을 잡았다, 세상과 감사 나누려”

입력 2015-07-09 00:56
최근 충남 당진에서 만난 구필화가 박정 집사. 그는 “기회가 된다면 주님의 뜻이 담긴 성화(聖畵)도 많이 그릴 것”이라며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당진=전호광 인턴기자
박 집사가 구필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 당진=전호광 인턴기자
화가의 집은 충남 당진 우강면 평야지대 한복판에 있었다. 주황색 지붕의 조립식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물이나 동물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 여러 점이 눈에 띄었다. 발걸음을 옮기니 갤러리로 꾸민 방이 나타났다. 66㎡(20평) 크기의 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선연하게 재현한 작품 10여점이 걸려 있었다. 화가는 “인간의 시선(視線)을 테마로 삼은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5∼6년 동안 인간 내면의 창(窓)인 시선을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 인물화 그리는 걸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죠. 과거에 오랫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느라 사람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게 사람 그리는 걸 좋아하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화가는 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에 출석하는 박정(41) 집사.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인 그는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필(口筆)화가다. 최근 만난 박 집사는 기구한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면서 “힘든 삶이었지만 하나님께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었다”고 거듭 말했다.

◇절망의 끝에서 찾은 희망=10대 시절 그는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였다. 강원도 강릉에 살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상경해 ‘축구 명문’인 서울 경신고에 입학했을 정도다. 그는 축구 스타를 꿈꾸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생의 궤적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뻗어나간 건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1년 8월부터다. 그는 서울 잠실의 한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을 크게 다쳤다.

“바닥에 머리를 찧으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목뼈가 부러졌죠.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부모님께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친 적도 많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입원 4개월 뒤 퇴원했다. “평생 이렇게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의료진의 최후 통보였다. 진종일 방에 누워 지내는 ‘골방의 삶’이 시작됐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화가의 꿈이 움튼 건 93년 어느 봄날부터다.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던 세살 터울 누나의 도움을 받아 입에 연필을 물고 사과나 컵 등을 그린 게 시작이었다.

“부모님이 제 그림을 보더니 울음 섞인 웃음을 터뜨리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아, 내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이화여대 인하대 등에 다니는 미대생들이 방문해 무료로 그림을 가르쳐줬다. 이후 그는 구필화가로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곰두리미술대전(1995)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1998) 대한민국미술대전(2000) 아시아미술대전(2003)에서 입선했다.

박 집사에게 가장 중요한 화구(畵具)는 나무젓가락이다. 그는 연필이나 붓을 나무젓가락 끝에 동여맨 뒤 젓가락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린다. 작업실 한쪽에는 다 쓴 젓가락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젓가락 끝이 부드럽지 않으니 처음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입안이 전부 부르튼 적도 많았고 입에 피가 가득 고인 채 그림을 그리기도 했죠. 그림 그리다가 목에 쥐가 난 적도 많습니다(웃음).”

◇박 집사의 신앙 이야기=그가 주님을 섬긴 건 사고를 당한 뒤부터다. 절망의 터널을 걷고 있을 때 주님은 그의 머릿속에 천국과 지옥의 형상을 보여줬다. 성령을 체험한 것이다. 박 집사는 “이전에도 교회를 나가긴 했지만 제대로 된 크리스천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축구부 코치가 광림교회 성도였어요. 코치 강권에 못 이겨 매주 교회를 나갔죠. 하지만 불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탓에 당시엔 염주를 차고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심이었죠(웃음).”

박 집사는 96년 사회복지사였던 임선숙(49) 집사와 연애를 시작했고, 99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박 집사에게 아내는 둘도 없는 조력자다. 당진에 살고 있지만 부부는 매주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러 상경한다. 특히 광림교회가 매년 6∼7월 40일간 새벽 4시45분에 여는 ‘호렙산 기도회’에는 2006년부터 10년째 빠짐없이 출석하고 있다.

“기도회 기간엔 밤 1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야 시간에 맞춰 서울에 도착하거든요. 40일간의 기도회가 끝나고 자동차 계기판을 보면 누적 주행거리가 40일 만에 1만㎞ 가까이 늘어나곤 하죠(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단 하루만이라도 비장애인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교회에 갈 겁니다. 두 발로 걸어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

당진=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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