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스무 살 지방자치

입력 2015-07-09 00:20

더 이상의 반전은 없었다. 청와대와 여당이 공동 연출한 ‘유승민 사태’는 권력의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면에는 상명하달에 익숙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이 특정인을 지목해 날 선 비난을 쏟아내자 국회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자 헌법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팽개치며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 듯한 볼썽사나운 행태에 참담하고 불쾌한 느낌을 갖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중앙집권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지방자치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7월 민선 1기가 출범했고 지난해 6·4지방선거를 통해 구성된 6기가 2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방자치는 선거로 구성된 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일정 정도 자율성을 갖고 해당 지역에서 행정자치를 실현해 가는 정치제도다. 서구에는 2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도 있지만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앙집권은 권력 독점과 지시, 이행이 특징이지만 지방자치는 분권과 자율, 소통, 협력이 핵심 가치다. 자치단체장은 지역 내 일상 행정사무 처리에는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다. 자치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지방행정의 내용과 색깔이 확연히 달라진다.

저소득층의 생활 보장을 위한 생활임금제 도입, 보호자 없는 환자 안심병원 운영,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복지 서비스 확충, 행정정보 공개 등 자치단체들이 앞 다퉈 행정서비스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방자치 시행 이후 20년 동안 전국 의료기관은 2배, 미술관·공연시설 등 문화시설은 5배, 체육시설은 63%가량 늘었다. 대중교통 서비스와 상하수도 보급률 등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생활서비스도 확대·개선됐다. 지방자치만의 효과는 아니겠지만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자치단체장들은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의 의중도 살피지만 주민들을 위한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기 마련이다. 주민들의 지지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소통하며 표심을 얻을 수 있는 정책들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치단체장은 선출된 권력이고 지역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라는 점에서 ‘오너’로 비유된다. 대통령이나 상급 행정기관의 눈치를 보던 과거 임명직 시·도지사나 시장·군수들과는 자세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역 현안을 놓고 중앙정부와 협력하기도하지만 때로는 강단 있게 맞서기도 한다.

방만한 재정 운용, 호화 공관 건립, 전시성 행사 개최, 비리 연루와 일탈, 전문성 부족 등 부정적인 면들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지방자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 6월 전국 20세 이상 국민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80%가 지방자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20년에 대한 종합 평가는 ‘긍정적’(31.2%)이란 답변이 ‘부정적’(26.5%)을 약간 앞서는 정도다. 제도에는 찬성하지만 운용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우리 지방자치는 이제 막 성년의 나이가 됐지만 토대는 여전히 허약하다.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전국 244개 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올해 45.1%에 불과하다. 지방세 수입으로 자체 공무원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곳이 절반을 웃돈다. 중앙정부로부터 기구와 정원을 통제받는 등 자치조직권도 미흡하다. 자치단체의 권한과 자율성은 확대하고 그에 따른 책임은 엄중하게 묻는 제도를 강구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인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중앙·지방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