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현장 속으로] 세월호- 메르스의 닮은 점… ‘정부·국민은 서로 못 믿었다’

입력 2015-07-13 02:32

세월호의 비극과 메르스 사태는 닮은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방역당국은 초동 대응 단계에서 발생 병원과 경유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당국의 비밀주의를 부추긴 것은 서울의 유명 대형병원장들이다. 메르스 쇼크로 국민들이 불안해할 때 대형병원의 수장들은 언론 인터뷰를 자처하며 병원명 공개 시 예상되는 사회적 파장들을 나열했다. 정부도 지난 3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특정 병원명을 밝힐 경우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며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여러 가지 불합리한 불안정과 공포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발생 병원과 경유 병원을 공개해 외래환자와 면회객을 제한해야 하지만 병원들과 보건당국은 중동발 메르스 바이러스로 나라가 휘청거릴 때도 국민들의 안전보다 병원명 공개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우려했다.

메르스 발생 병원과 경유 병원 명단이 공개된 것은 지난달 7일이다. 메르스 발생 18일째만이다. 방역당국이 병원명을 공개한 것은 병원명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서가 아니다. 밀접접촉자를 파악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자신이 이용했던 병원이 메르스 발생 병원 또는 경유 병원임을 알고 스스로 메르스 의심자임을 밝히고 확진검사가 가능한 보건소로 향했다. 당국의 방역망에 누락됐던 밀접접촉자들이 파악되는 시점이다.

보건당국과 대형병원 수장들이 병원명 공개를 꺼렸던 배경 중 하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양수준을 낮게 봤기 때문이다. 메르스 환자 경유 병원조차 메르스 바이러스 온상지로 보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실제 메르스의 여파로 외래환자가 줄어 병원의 수입은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입원환자와 외래환자, 면회객 모두는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병원 내 감염 예방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또 방역당국은 자가격리를 실시하기 전에 격리자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도 국민들은 혹시 자신 때문에 또 다른 감염자가 발생할까 봐 집안으로 몸을 숨겼다. 처음부터 국민들을 믿어줬더라면 한국에서의 메르스 종식은 더 빨랐을지 모른다.

메르스가 진정 국면에 들기까지 현장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공이 크다. 그러나 숨은 주역은 국민이다. 이웃을 위해 14일이란 긴 시간을 기꺼이 세상과 단절시키는 배려심을 보였고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들이 집단 패닉을 보이는 병원도 없었다. 국민들은 병원이 알려준 위생수칙을 따랐고 또 메르스 종식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응원했다. 메르스 환자를 살리려다 감염된 간호사의 소식을 듣고 함께 슬퍼했다. 지역주민은 폐쇄병원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고 또 다른 주민은 익명으로 고생하는 의료진을 위해 방호복과 각종 과일 등 3000만원어치를 병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우리와 똑같이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미국의 한 병원에서는 확진 당일 방역당국과의 논의 후 메르스 환자 유입을 지역사회에 알렸다. 당시 병원은 추가 확진자 한 명 없이 해당 환자를 완치시켰다. 종식도 빨랐고 추가피해도 없었다. 병원은 “신종감염병 확산방지의 제1원칙은 투명한 정보공개”라고 밝혔다. 아프리카든, 중동이든 어느 곳의 신종감염병도 국내로 유입될 수 있다. 비밀주의와 전문가주의를 내건 대책이 얼마나 큰 실패를 초래하는지 방역당국도 병원도 알아야 한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