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두 달 어쩌다 국민이 병원을 못믿게 됐나… 주범은 병원내 감염

입력 2015-07-13 02:17
환자가 붐비는 응급실과, 다인병실에 여러 환자가 지내는 것은 병원 내 감염 확산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암환자요? 말도 마세요. 중증환자라고 해서 빨리 진료를 받을 수도 없어요. 간이침대도 없고 앉을 의자도 없어서,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링거액을 주사(정맥주사)하는 경우도 많아요. 가끔 기침을 심하게 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워낙 병원이 분주하다 보니 환자를 분류할 시간도 없어요. 감염병이 발생하면요? 6인실도 마찬가지죠. 역병이 돌아도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진다면 환자나 의료진들은 속수무책이에요. 이게 우리나라 의료현실입니다."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지원(가명)씨는 응급실은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다'고 비유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해도 병원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병원 내 응급실은 감염병이 확산되기 좋은 환경이다. 삼성서울병원 등 메르스 감염이 확산된 공간은 '응급실'이었다. 실제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41.5%가 응급실에서 인플루엔자 등 각종 감염병을 경험했다는 조사도 있다. 이는 병원 응급실이 각종 병원체로 오염돼 환자는 물론 의료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음을 뜻한다. 메르스가 삽시간에 퍼진 것은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병원이 '감염에 취약한 환경'이라는 점도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신종 감염병 발생 이전에도 우리나라 병원은 늘 감염병에 있어서 취약한 환경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다인실에 있다 사망”, 병원 2차 감염이 더 위험=병원은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모인 공간이다. 의료인도 환자도 감염에 있어서 취약하다. 병원성 미생물에 노출돼 의료감염으로 질환이 더욱 악화되는 환자들도 많다. 아버지를 여읜 김명수(가명)씨는 “우리 아버지도 기저질환이 있었는데, 갑자기 폐렴으로 돌아가셨다”며 “당시 다인실에 머물러 계셨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의료인들 역시 감염 노출에 취약하다. 실제 2005년 한국산업안전보건 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료종사자의 30%가 감염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김연하 동아대 간호대 교수는 “병원 응급실은 감염병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가 찾아오는데다 다수의 치료 행위들이 환자의 질병 내력을 전혀 모른 채 이뤄져 늘 감염 위험에 노출된 곳”이라며 “병원감염 예방을 위한 보호 장구나 물품을 의료인이 실제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메르스 발생 시 ‘세계보건기구(WHO)-한국 메르스 합동평가단’은 짧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많은 사람에게 전파된 주요 원인으로 ‘환자가 붐비는 응급실과, 다인병실에 여러 환자가 지낸 것’을 지목했다. 특히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다인실에 많은 환자들이 밀집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각종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전염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허대석 서울대의과대학 내과학교실 교수는 “응급실이나 입원병동, 외래진료실은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독립 건물로 분리해 관리하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병원은 한 건물 내에 모든 시설이 밀집돼 있다”며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보유한 환자가 다른 환자와 밀집된 공간에 함께 있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번 메르스 사태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다인실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독려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상급 종합병원의 4인실 이상 다인실 의무비율을 현행 50%에서 70%로 높이는 개정안을 오는 7월 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복지부의 방침은 의료기관 내 감염을 통해 전파되는 현 상황서도, 선진국의 병원 환경 개선 움직임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감염병 예방을 위해 모든 병상을 1∼2인실로 바꾸는 것이 비현실적 대책이며, 결국 환자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신 국가 재난 시 반드시 필요한 음압병실(병실 내 기압을 낮게 유지해 공기가 복도로 빠져나가지 않게 만든 병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감염관리 전문연구병원을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중소 병원 감염 관리 더 취약=병원 내 2차 감염은 규모가 큰 병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1회용 의료기기를 재사용하거나 의료기관의 위생관리를 소홀히 해 소규모 의원에서도 환자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감염 제2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소규모 병의원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교육이나 지침이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전국 의료기관들에 대해 병원감염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며 손 씻기는 물론이고, 중환자실의 철저한 구획화와 소규모화를 통해 병원감염관리를 위한 예방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우리는 법으로 정한 의료기관들의 병원감염관리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에 전담과를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장기 로드맵 마련까지 세분화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동익 의원은 “우리나라 병원감염관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와 의료기관의 의지 부족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실행하기로 했던 감염관리 예방·관리 계획 중 지켜진 것이 거의 없다. 중환자실 칸막이 설치, 의료인 가운 교체, 환경개선 등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했으나 실제로 실시한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감염내과 의료진 등 전문인력 확충, 수가 현실화” 요구=의료계는 정부가 감염관리를 위해 인력과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염관리는 눈에 띄는 수입 창출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선뜻 적극적인 인력배치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주요 대형병원의 감염내과 전문의는 평균 3∼4명에 불과하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유진홍(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 회장은 “300병상 당 최소 1명의 감염관리 의사, 150병상 미만의 병원에 감염관리 전담인력 1인 및 150병상 추가 당 1인씩 추가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감염 관련한 수가도 인정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