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황태순] 친노-비노 차라리 갈라서라

입력 2015-07-09 00:49

새정치민주연합이 사라졌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원내사령탑과 정치권 전반을 격정적으로 질타한 이후의 현상이다. 한창 내홍에 휩싸여 있는데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육참골단(肉斬骨斷)이니 어쩌니 하며 호기롭게 출범했던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요즘 무엇을 하는지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박지원 의원이 말하는 네 갈래의 신당 창당 흐름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국회법 개정 재의안 표결 과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을 향해 ‘투표’ 피켓을 흔드는 무기력한 모습이 전부인 것 같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야당의 존재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전통적 의미의 야당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국민 지지를 획득하기 어렵다. 야당은 수권정당으로서 당당함과 의연함, 그리고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집권세력에 염증을 느끼고 비판하고 싶을 때 그 대안으로서 언제든 국민의 위임에 따라 국가운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정말 소중한 순간들을 허송하고 있다. 지난 2·8전당대회를 통해 문재인 체제를 출범시켜놓고서도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 여전히 계파주의 청산을 놓고 소모적 정쟁으로 스스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내부 역량을 깎아먹고 있다. 과연 친노와 비노는 물과 기름같이 섞일 수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서로 충분히 융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당무운영권 및 공천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것일까. 과연 친노 계파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호남패권주의는 또 무엇일까.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도 갖출 수 있다.

486운동권 출신과 노무현정부 시절 국정에 참여했던 세력이 주축인 친노는 정치성향상 분명 진보세력이다. 그에 반해 옛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은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에 가까운 중도좌파다. 세상을 바라보는 준거의 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친노는 심상정·노회찬의 정의당과 오히려 가깝고, 비노는 새누리당 개혁세력과 도리어 잘 어울린다.

이렇게 뿌리도 생각도 다른 두 세력이 굳이 오월동주(吳越同舟)를 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두 세력 다 그러지 못한다. 왜일까. 친노는 간판스타가 있지만 저변이 약하다. 비노는 저변은 튼실한데 간판스타가 없다. 각자의 길을 가고 싶어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러니 일단은 함께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들볶을 수밖에.

낭패(狼狽). 낭(狼)은 앞다리는 길고 뒷다리가 짧다. 패(狽)는 반대로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는 길다. 죽으나 사나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파행적 모습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예의일까. 발전적 해체를 통해서 새로운 면모로 일신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총선 승리가 정당의 최종 목표일 수는 없다. 대선 승리를 위한 교두보 확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내년 4월 총선에서는 각자의 색깔대로 지지층을 모으고 세력화한 다음, 정책공조와 연대를 통해서 연합세력을 구축하고 대선 승리를 견인하는 것이 맞는 해법이다. 더 이상 내부 싸움으로 국민들을 지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치소비자인 유권자의 입맛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짜장면이면 짜장면이고 짬뽕이면 짬뽕이지, 짬짜면을 내놓고 ‘이거라도 드시라’고 강요한다면 어느 손님이 젓가락을 들겠는가.

황태순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