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A군(8)은 지난해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함께 태권도장에 다니던 B군은 A군을 시도 때도 없이 발로 차고 화장실로 쫓아와 밀치고 놀렸다. 폭행을 목격한 같은 반 친구들도 ‘이어달리기’를 하듯 A군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쯤 어머니 허모(34)씨는 한창 수업 중이어야 할 A군에게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전학 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허씨는 “아이가 ‘전학’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 또한 충격이었다”며 “담임교사를 찾아가 이야기했고 가해학생은 반성문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군은 태권도장에서 A군을 만나자 “너 때문에 혼났다”며 협박을 했다고 한다. 허씨가 가해학생 부모를 만나보려 했지만 담임교사는 “싸움이 커질 것”이라고 만류했다. A군과 B군은 올해도 같은 반에 배정됐고, 허씨의 걱정은 커졌다. 겨우 담임교사에게 “예의주시하겠다”는 약속만 받아둔 정도다. 허씨는 “때리는 아이는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맞는 아이는 그게 ‘놀이’인 줄 안다”며 “마음이 아프지만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참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C군도 학교에서 ‘놀이’에 시달렸다. 여학생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낄 법한 폭력을 당했다. 약한 자폐 증세를 앓고 있는 C군은 스스로 이 행동이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눈치를 채고 서울의 한 장애아동센터를 찾았다.
자폐 증세를 보여 같은 반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신체·언어폭력을 당한 중학생 D군의 경우 학교 측에서 부모에게 전학을 권한 일도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장애아동은 괴롭힘을 당해도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학교폭력에 더 취약하다”며 “학교 측도 외부로 학교 이름이 노출될까봐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발달장애 학생 폭행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피멍이 든 아이 사진은 온·오프라인에서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이런 장애학생 폭행은 전국 곳곳에서 ‘놀이’라는 이름 아래 수시로 벌어지고 있었다. 피해학생도 가해학생도 심각성을 모른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7일 교육부의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다니는 자폐성 장애학생은 1만45명이다. 올 들어 처음 1만명을 넘었다. 자폐성 장애를 포함해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장애아는 서울에만 1만3146명이 있다. 통합교육은 ‘동시대를 살아갈 또래들과 어울리게 하자’는 지침 아래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같은 학업 과정을 수행하는 교육 형태를 말한다.
서울시내 약 70%의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마련돼 장애아동이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고 있다. 다만 교사들은 통합교육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E씨(57·여)는 “모든 학교의 학생이 받는 장애 이해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밖에 통합교육을 한다고 해서 추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교사로서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통합학급을 맡을 교사는 대부분 제비뽑기로 결정한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F씨(29·여)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비장애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고 싶어 하지만 교육현장에선 준비도 부족하고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장애아동이 폭행을 당해도 따로 관리하지 않고 학교폭력으로 구분해 관리한다. 관련 통계도 전무하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장애교육이 다소 부족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서도 “실제 학급에선 비장애아동이 장애아동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 하는 문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과거 5년, 10년 전보다 현재 사회 분위기가 좋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아직 가시화된 개선 방안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미나 조효석 홍석호 최예슬 기자
mina@kmib.co.kr
[자폐성 장애학생 1만명… 통합교육 현장의 그늘] 때리고… 놀리고… 폭력을 놀이로 아는 아이들
입력 2015-07-08 02:14 수정 2015-07-08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