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논의 1년, 문제 없나] 국민은 모른다는데… 사법부는 ‘소통’보다 ‘속보’

입력 2015-07-08 02:02
국민 절반은 상고법원에 찬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안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찬성표를 던진 응답자의 대부분은 상고법원이 뭔지 모른다고 답했다. 막연한 찬성인 셈이다.

반면 상고법원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 중에는 상고법원 반대 의견이 높게 나왔다. 상고법원이 도입될 경우 뒤늦게 제도를 인식한 재판 당사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 20년간 수차례 상고심 제도 개편을 시도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던 과거의 실패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상고법원, 절반은 찬성인데 뜯어보면…=7일 국민일보가 집계·분석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고법원 설치안 찬성은 48.8%였다. 반대는 18.4%, ‘모르겠다’며 판단을 유보한 응답자는 32.8%였다.

언뜻 찬성 비율이 높아 보이지만 다른 문항과 교차분석하면 통계상 ‘허수’가 포착된다. ‘상고법원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 중 42.3%, ‘들어는 봤지만 무엇인지 모른다’는 응답자 중 55.6%가 찬성에 표를 던졌다. 구체적 내용을 모르면서 그냥 찬성한 것이다.

이에 반해 상고법원을 알고 있는 응답자 사이에서는 반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략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 알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32.4%가 상고법원에 반대했다. 특히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응답자의 45.8%는 상고법원 설치 반대쪽에 섰다. ‘안다는 사람’ 사이에서는 반대 논리가 더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 국민보다 국회의원·법조인 설득에 주력=대법원의 시선은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 있지 않다.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법조인들을 설득하는 홍보전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말 법안 발의를 위해 전국 지방법원장들이 지역구 의원을 만나 상고법원 설치 필요성을 설득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달에는 일부 판사들이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고법원 설치에 찬성 의견을 표명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대한변협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변호사들에게 의사결정을 사실상 강요하는 행위”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대로 국민에게 상고법원 설치의 필요성을 알리는 노력은 부족하다. 지금껏 대법원과 대한변협, 국회에서 총 4차례 공청회가 열렸지만 관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지하철 등에서 볼 수 있는 홍보용 포스터에는 상고법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 설명조차 없다.

상고법원 설치에 대해 ‘모르겠다’고 응답한 사람 대부분은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 어렵다’(39.6%) ‘상고법원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찬반의견을 내기조차 어렵다’(37.2%)는 이유를 댔다.

이런 상황은 취임 초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기치로 내걸었던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 기조에도 벗어난 것이다.

◇상고심 개편, 이번에는?=상고심 제도는 지난 50년간 수차례 개편됐다. 새롭게 개편·시행됐던 제도들은 뒤늦게 부작용을 드러냈다. 결국 대법관이 모든 상고심을 관할하는 체제로 복귀하는 일이 반복됐다.

1961년에는 고등법원에 상고부가 설치해 1심 단독사건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사건의 3심을 맡았다. 하지만 상고심 재판이 각 지역에 분산되면서 법해석의 통일을 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63년 폐지됐다.

81년에는 상고허가제가 도입됐다. 대법원에서 상고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3심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는 상고 허가비율이 10%에 머물면서 국민들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과 함께 90년 폐지됐다. 2010년 사법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대법관을 24명으로 증원하는 방안, 고등법원에 상고심사부를 설치해 상고 적격 여부를 판단케 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대법원과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채택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재화 변호사는 “상고법원 설치는 국민 권리와 관련된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며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