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추억이 묻어나는 그 시절 그 서커스… 우리나라 최초·유일 동춘서커스단을 가다

입력 2015-07-08 02:37
공중에서 늘어트린 붉은색 천에 여성 곡예사의 몸이 얽혀졌다가 떨어지는 에어리얼 실크(aerial silk)는 묘기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캐나다 서커스단인 태양의 서커스에서 소개된 아트 서커스의 하나로 강렬하면서도 아찔한 느낌을 준다. 현대 서커스는 단순한 묘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서커스에 이야기를 넣고 예술성을 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성 곡예사가 공연 전 얼굴에 분장을 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마련된 상설공연장에서는 공연이 평일 2회, 주말 3회씩 90분 동안 진행된다.
한 사람씩 의자 하나를 들고 쌓아 올라가는 의자 탑쌓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5명의 곡예사들이 중심 잡기도 힘든데 마지막에는 물구나무를 선다(왼쪽). 온몸을 둘러싼 50개의 훌라후프가 프리즘처럼 빛을 반사하는 모습이 도예 공방의 물레에서 도자기가 빚어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오른쪽).
관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공중곡예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곡예가 성공하자 안도하는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중국 전통의 가면술로 얼굴에 쓴 가면과 의상이 순식간에 바뀐다. 단원들 대부분이 중국기예단 출신들로 바뀌면서 공연 내용에 중국전통 묘기가 가미됐다.
“초대형 아트 서커스! 90년 전통의 동춘서커스가 여러분을 놀라운 세계로 안내합니다.”

박세환(70) 단장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공연 시작을 알린다. 사회자의 툭툭 던지는 멘트에 경륜과 노련미가 묻어난다.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천막공연장 안은 열기로 후끈하다.

공과 훌라후프, 모자 등을 이용한 현란한 묘기가 쉴 새 없이 펼쳐지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을 떼지 못한다. 줄 하나에 몸을 맡긴 곡예사가 10여m 높이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빙글빙글 큰 원을 그린다.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관객들은 어느새 곡예사와 하나가 된다. 긴장감 속에 신기에 가까운 곡예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관람객 이영이씨는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옛 생각도 나서 정말 재미있고 좋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국 서커스는 1925년 동춘서커스에서 시작됐다. 신파극과 공중곡예, 마술뿐만 아니라 온갖 동물의 묘기는 당대 최고의 볼거리였다. 형형색색의 천막공연장은 가득 메운 구경꾼들로 한바탕 축제의 장이었다. 한때 서커스 곡예단이 20여개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곧 세상은 변했다. 텔레비전의 보급이 신호탄이었다. 사람들은 안방에서 TV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와 쇼 프로를 즐겼다. 동춘서커스 소속이었던 배삼룡 서영춘 구봉서 등이 대거 방송국으로 옮겨갔다.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는 동춘서커스 출신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서커스단이 대중의 무관심 속에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춘서커스단도 해체 위기를 겪는 등 숱한 우여곡절 끝에 지금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250명에 이르렀던 단원은 40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도 중국기예단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78년부터 동춘서커스를 이끌어 온 박 단장은 “옛날 방식의 단순한 묘기 대신 스토리가 있는 현대적인 아트 서커스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서커스의 대명사였던 동춘서커스가 새로운 변신을 통해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안산=사진·글 이동희 기자 leed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