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반란] EU, 출범 22년 만에 최대 위기… 분열로 가나

입력 2015-07-07 03:09

그리스 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이 주도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거부하면서 EU의 위상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 ‘유럽 통합과 회원국 간 화합’을 내세웠던 EU가 회원국 간 볼썽사나운 갈등 양상을 보이면서 출범 2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그리스 국민들이 이번에 당장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 차원에서 마련된 컨센서스(공통적 의견)를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유럽에선 1993년 EU 출범 이후 스웨덴 및 핀란드의 EU 가입 결정(1994), 아일랜드의 EU 재정삭감협약 비준(2012), 이번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안 국민투표(2015) 등 유럽 공동체와 관련해 4차례 주요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이 중 그리스를 빼곤 나머지는 EU 공동체에 잔류하거나 EU 차원의 의사 결정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EU 시절 이전인 75년 영국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도 유럽경제공동체(EEC) 잔류 결정이 나왔다. 85년 그린란드가 주민투표로 EEC 탈퇴를 결정했지만 인구 5만여명인 소국의 결정이어서 눈길을 못 끌었다.

유럽에선 그리스가 EU 창립국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울러 EU는 28개 회원국 중 그리스를 포함해 19개국이 95년 단일통화인 유로화 출범에 합의해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그리스의 결정이 EU 차원은 물론 유로존 체제에 던져주는 충격파도 적지 않다.

향후 그렉시트로 이어진다면 ‘EU 회의론’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 그렉시트 움직임은 EU의 리더 격인 독일 주도의 ‘긴축 정책’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것이어서 비슷한 불만이 제기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폴란드에서도 반EU·반긴축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반영하듯 반긴축 운동을 펼쳐온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는 “EU의 프로젝트가 죽어가고 있다”고 지적했고,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도 “유로존 해체의 시작”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더 강한 통합’을 요구하며 회원국들에 필요한 경제적 조치를 강제하자는 독일과 ‘강제’ 대신 ‘협상’을 강조하는 프랑스 간의 견해차 때문에 양측이 대치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럴 경우 유로존이 독일 및 북유럽 진영과 프랑스 및 남유럽 진영으로 갈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U 내 삐걱거림이 확산되면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키로 한 영국에서 탈퇴 쪽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올가을 포르투갈 총선에서도 긴축에 반대하는 사회당이 집권하면 그리스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

이와 함께 스웨덴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 유로존 가입을 고려 중인 7개국이나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터키 등 5개의 EU 가입 후보국에서도 가입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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