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반란] 그리스 운명, ECB 손에

입력 2015-07-07 03:18 수정 2015-07-07 18:50

그리스의 운명을 당장 좌지우지할 주체는 유럽중앙은행(ECB)이다. 은행 잔고가 사실상 바닥난 그리스 시중은행들에 ECB가 자금 지원을 해주지 않을 경우 그리스 금융이 일시에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중앙은행도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한 ‘반대’가 확정된 뒤 제일 먼저 ECB에 긴급유동성지원(ELA)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ELA는 정부 간 거래인 구제금융과 별개로 회원국 시중은행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ECB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각국 중앙은행이 지원하는 은행과 은행 간 자금 거래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6일(현지시간) 내부 회의에 이어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등과 그리스가 요청한 ELA 증액 여부를 논의했다.

블룸버그는 “ECB가 ELA 확대 여부를 자체 결정하기보다 7일 열리는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와 유로존 정상회의 결과를 본 뒤 증액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ECB는 현재 890억 유로(약 110조원)의 ELA를 그리스에 지원해주고 있다. ECB가 이 한도를 증액하지 않는다면 그리스 은행들은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실제로 그리스 루카 카첼리 은행연합회장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은행들의 잔고가 지난 3일 기준으로 11억 유로(약 1조3600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항간에는 주말을 지나면서 이미 잔고가 바닥났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ELA 증액이 안 되면 그리스 은행들이 예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은행 영업을 재개할 수 없다. 구제금융을 갚지 못하면 그리스 정부 차원의 대외적인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해당되지만 ELA 지원 중단은 곧 그리스 은행이 국민들에게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리스 사회가 극도의 혼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을 비롯해 유로존 내부에서도 그리스 국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ECB의 35억 유로(약 4조3500억원) 채무 상환 만기일인 오는 20일까지 최소한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브리지 프로그램’이 작동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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