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과거사 외교’ 첫 성과… 위안부 매듭도 푼다

입력 2015-07-07 02:21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의 한국인 강제 노역을 사실상 시인하면서 우리 정부가 ‘과거사 이니셔티브’를 장악했다는 평가다.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가 높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도 꽉 막힌 한·일 관계의 최대 난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다음달 예정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아베 담화)가 마지막 고비가 될 전망이다.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하는 순간, 위원국 대표들은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2차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한 것인데, 축하 ‘인파’가 일본보다 오히려 배 이상 많았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 피해와 식민지배, 강제 징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리 정부는 실리를 챙기면서도 일본에는 형식상 명분을 쥐어줬다. 등재 결정문(Decision) 대신 주석(footnote)을 통해 일본의 자기반성을 적시한 것이다. 일본이 하루 만에 이를 부인하면서 ‘절반의 승리’란 부정적 평가도 나오지만 추후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에 대비한 전략적 포석이란 해석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일본과의 협상은 난제가 많아 향후 수십년을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권도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아베 총리가 고노·무라야마 담화 유지를 천명했고, 아베 담화에 대해서도 ‘과거사 부정’ 기조를 버리고 ‘과거사 인정’의 수위를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담화 관련 총리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좌장 대리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국제대학 학장은 최근 “총리에게 제출할 보고서에 일본의 ‘침략’ 사실을 넣겠다. 담화에 ‘침략’ 표현을 넣을지는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물러섰다. 일본도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타결책을 부심하는 셈이다.

특히 일본 내에서는 아베 총리의 집단 자위권 법안 추진 과정, 중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언론 보도 등 지나친 민족주의적 행보를 두고 피로감을 호소하는 소리도 나온다.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통한 돌파구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되는 상태다.

일단 과거사의 일부인 강제 노역에 대해 한·일 간 합의가 이뤄진 만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도 높아졌다. 과거사 이슈가 강제노역에서 위안부 문제로 전선이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일본 자민당 정권 특유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가 바뀌는 상황에서 지난달 성사된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합의 아래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대일 압박 수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