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치프라스(41·왼쪽 사진) 그리스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61·오른쪽) 독일 총리의 한 치 양보 없는 ‘치킨게임’은 치프라스 총리의 승리로 끝났다. 5일(현지시간)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받아든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벼랑 끝 전술’로 국민투표를 밀어붙여 재신임을 받은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밤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반대 결정은 민주주의는 협박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은행 영업재개 등을 위해 즉시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헤어컷)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고 평가한 보고서를 언급하며 “이제는 협상 테이블에 부채 문제를 올릴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협상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야당 대표들과 6일 회동하겠다고 했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하는 채권단에 맞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까지 감수하며 국민투표 승부수를 띄운 치프라스 총리의 기민함이 돋보인 순간이다.
지난 1일 TV 연설에서 국민투표 강행 방침을 밝히며 국민들에게 “반대표를 던져 달라”고 애절한 눈빛으로 촉구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 전 유권자들에게 “품격 있는 미래를 위해 반대를 던져 달라”고 호소하면서 반대로 결과가 나오면 48시간 이내에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든든한 신임을 얻은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내에선 물론 유럽에서의 위상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민투표 이전에 추가협상은 없다며 그리스를 거침없이 몰아세우던 메르켈 총리는 유럽 내 공고한 위상이 흔들리게 됐다. 내심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우세해 치프라스 총리의 항복이나 실권을 기대했지만 예상외 결과가 나오면서 그리스와 국제채권단의 협상 재개 가능성은 물론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결속까지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메르켈로서는 협상 테이블을 버리고 그리스를 떠나보내거나, 상당한 양보를 통해 그리스를 붙잡아야 한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 인디펜던트 등 외신들은 관련 소식을 전하며 메르켈 총리의 찡그린 표정을 함께 실었다. 슈피겔은 치프라스 총리에 대해 ‘아테네의 연기자’란 표현을 쓰며 기독민주당(CDU) 내부에서도 치프라스 총리와의 신경전에서 패한 메르켈 총리의 좌절감을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메르켈 총리가 향후 그리스와의 협상 재개 시 국내 정치권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그리스의 반란] 승기 잡은 치프라스 vs 타격 입은 메르켈
입력 2015-07-07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