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멕시칸 불법 체류자의 ‘묻지마 살인’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개혁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이 법원의 제동으로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이른바 ‘피난처(Sanctuary)’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주에 거주하는 멕시칸 프란시스코 산체스(45·사진)는 지난 1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에서 산책하던 캐스린 스타인리(32·여)에게 총을 쏘아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수사결과 산체스는 중죄(felony) 전과가 7건 있으며 5차례 멕시코로 강제로 송환된 전력이 있는 불법 이민자로 밝혀졌다. 그의 중죄 전과 7건 중 4건은 마약 관련 사건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멕시코로 강제송환된 것은 2009년이었으며 텍사스에서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보호관찰 대상으로 분류돼 있었다.
연방 국토안보부(DHS) 산하 이민관세수사청(ICE)은 산체스가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직후인 올해 3월 26일 그의 신병을 한때 확보했으나 샌프란시스코경찰국(SFPD)이 산체스에 대해 마약 사건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으므로 그의 신병을 SFPD에 넘겼다.
ICE는 당시 SFPD에 산체스가 석방되면 사전에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통보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산체스를 체포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돼 산체스는 카운티 구치소에서 4월 15일 풀려났다. 카운티 구치소는 산체스의 석방 사실을 경찰에 통보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ICE에도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산체스의 석방 사실이 경찰이나 ICE에 통보되지 않은 것은 샌프란시스코시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피난처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1989년 조례를 통해 연방정부 업무인 불법 체류자 단속을 중지하고 불법 체류 신분과 국적만으로 수색·구금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피난처 조례’를 제정·시행했다. 피난처 조례는 1980년대 중남미 각국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탄압과 박해를 피해 넘어온 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입안됐다.
ICE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경찰에 불법 이민자의 신병을 확보해 넘겨달라는 ‘구금 요청서’를 보내고 지자체와 지역 경찰의 협조를 받아 이들을 추방하거나 구금해 왔다.
산체스가 저지른 ‘묻지마 살인’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연방기관인 ICE와 샌프란시스코 지자체 간 책임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ICE는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시 경찰이 중죄 전과자의 신병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비판하는 반면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시 경찰은 “ICE가 산체스의 구금현황을 알고 있었으면서 법원에 체포영장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계 이민자들을 마약 범죄자와 성폭행범에 비유한 막말 논란과 맞물려 정치적 쟁점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불법이민자의 ‘묻지마 살인’에… 오바마 이민개혁, 발목 잡히나
입력 2015-07-07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