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을 덮은 노곤한 비단이불을 차 던지라. (중략) 우리는 눈뜨고 장님이 되지 말고, 귀 있고 귀머거리가 되지 말고(후략).’
단편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로 잘 알려진 소설가 나도향(1902∼1926). 그가 배재학당 학생이던 1921년 교지 ‘배재학보’ 제2호에 쓴 글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와 자각이 엿보인다.
1885년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고등교육기관 배재학당이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 서울 중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이를 기념해 ‘교지로 본 시대상: 젊은 날의 꿈’ 전을 기획했다.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교사로 있었고 문인 김소월, 국어학자 주시경, 정치인 이승만 등이 이곳에서 배웠다.
배재학당 교지는 1898년 창간된 ‘협성협회보’가 출발이었다. 협성협회는 한국 청년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 교지명은 이후 1918년 ‘배재학보’, 1922년 ‘배재’로 변화된다. 1986년 제31호까지 전시돼 시대 변천에 따른 그들의 꿈과 고민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김소월의 시 ‘달밤’ 등 미공개시를 포함한 7편의 초기 작품이 실린 배재 2호(1923)는 따로 영인본을 전시해 전체 내용을 볼 수 있다. 동아리 활동사진, 졸업장, 졸업앨범, 통신부(성적표) 등 시각 자료가 풍부하다. 김종헌 관장은 “교지는 한글 어휘와 맞춤법, 문법체계, 글씨체, 표지 디자인의 변천까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나도향과 김소월이 공부했던 당시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6월 30일까지(02-319-5578).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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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에 배재학당 130년 역사 오롯이…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기획전
입력 2015-07-07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