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초상화 되찾는 길고 힘든 여정…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명화에 얽힌 이야기 ‘우먼 인 골드’

입력 2015-07-08 02:25
영화 ‘우먼 인 골드’에서 주인공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사진 왼쪽)과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그림 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는 장면. 에이블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의 소재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에이블엔터테인먼트 제공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작품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에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유디트’(1901)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907) ‘입맞춤’(1907∼1908) 등 그의 대표작에는 언제나 여성이 등장한다. 여인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9일 개봉되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는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는 영화다. 상류층 여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1881∼1925)의 지원을 받은 클림트는 그녀에게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다. 영화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처럼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를 다룬 게 아니라 이 그림을 둘러싼 국제적 반환 소송 실화를 그렸다.

영화의 배경은 1998년 미국. 유대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은 숨진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에 걸려 있는 바우어의 초상화를 비롯한 클림트 작품 5점을 되찾으려고 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알트만은 그림의 모델인 바우어의 조카다. 알트만은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할 무렵 극적으로 도피해 미국에 왔다.

알트만을 딸처럼 아끼던 큰아버지 부부를 비롯한 가족은 저택에 수많은 예술품을 두고 즐겼으나 1943년 나치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심지어 바우어가 착용하고 있던 금목걸이마저 압수당했다. 바우어 초상화는 그녀가 벨베데레 미술관에 기증의사를 밝힌 유서를 근거로 오스트리아의 유산으로 남아있었다. 작품명은 ‘레이디 인 골드’로 바뀌었다.

알트만은 오스트리아 이민자 가정의 아들인 젊은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에게 그림을 되찾을 방법을 묻는다. 알트만과 쇤베르크는 절대 돌려줄 수 없다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8년에 걸친 싸움을 시작한다. 바우어의 기증 유서가 있는데다 미국 국적으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국제 소송을 벌이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도저히 넘기 어려울 것 같은 벽을 하나씩 뛰어넘어 정의를 실현하는 여정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알트만이 때때로 빠져드는 회상 속의 과거 장면들도 눈길을 끈다.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찬 바우어 저택의 모습,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손잡고 춤을 추는 무도회 장면,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빈의 풍경 등은 영화에 낭만과 여유를 불어넣는다.

“오스트리아가 이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며 강제 압수한 유물을 돌려주기를 호소하는 헬렌 미렌의 연기가 압권이다. 기나긴 고난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인생의 끄트머리에 유머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노년의 여성을 품위 있게 해냈다. 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개업 실패로 빚에 쪼들린 미국의 청년 변호사가 순수한 열정을 되찾아 나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재판과정에서 미국 판사들이 보여준 재치 넘치는 유머가 웃음 짓게 한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을 연출한 사이먼 커티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에필로그. 주인을 되찾은 이 그림은 2000년대 1억3500만 달러(약 150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초상화 가운데 최고가다. 오스트리아에는 나치 시절 강제 압수한 그림이 10만점이 넘는다고 한다. 12세 관람가. 109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