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중국 지하경제와의 전쟁… ‘전자영수증’으로 잡는다

입력 2015-07-07 02:10



‘짝퉁 천국’ 중국엔 가짜 영수증도 많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이 탈세를 목적으로 ‘파피아오’라는 가짜 영수증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하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자 중국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전자영수증’ 카드를 꺼내들었다. 알리바바 등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전자영수증을 확산시키겠다는 정부 의지에도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로 인해 탈세로 비용을 아낀 뒤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던 영세사업자들이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 창업비용도 오를 수밖에 없어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창업 붐’ 조성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국으로서는 당연히 세수 집행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딜레마가 생긴 셈이다.

◇중국 경제 갉아먹는 지하경제=국제 반부패 단체인 국제재정건전협회(global financial integrity institute)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불법 유통자금 규모는 2496억 달러(약 280조원)로 세계 최대 규모다. 세수에서 누락된 불법 자금 규모는 2007∼2012년 연평균 1250억 달러에 이르고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짜 영수증을 이용한 탈세는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모든 기업 거래에 정부가 발행한 정식 영수증을 쓰게 했다. 이 영수증에는 중국 정부 인장과 일련번호가 표시된다. 하지만 영수증은 조직범죄단의 위조로 인해 악용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영수증 탈세를 막기 위해 강도 높은 단속에 들어갔다. 단속이 시작된 2009년 당국은 5134명을 체포했고, 파피아오 제작 회사 1045곳을 폐쇄했다. 2010년엔 관련 조직범죄단 1593명을 적발하고, 허위 신고 업체 7만4833곳을 단속했다. 중국 당국은 2013년 기업체 315곳의 탈세를 도운 중국 동부 저장(浙江)성의 한 사업가를 체포했고, 같은 죄를 저지른 중국 북서부 간쑤(甘肅)성의 정부 관료를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회심의 카드 ‘전자영수증’=그러나 여전히 가짜 영수증이 판치자 중국 정부는 전자영수증이라는 회심의 카드를 내놓았다. 전자영수증은 기존 종이 영수증을 컴퓨터 파일 형식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기업이 전자영수증을 발행하면 관련 거래 정보는 세무 당국 시스템에 자동 연결된다. 중국은 연매출 24만 위안(약 4350만원) 미만의 영세기업에 대해선 매출 규모와 상관없이 500위안의 세금만 걷는 ‘포세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매출액을 낮춰 신고하는 방식으로 이를 악용하던 기업들이 더 이상 매출 규모를 속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전자영수증 제도가 확산되면 정부는 세무조사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징세 기업을 늘릴 수 있다. 이 제도는 2012년부터 베이징, 상하이, 충칭, 칭다오 등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전자영수증 정보는 세무 당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는 가짜를 떼 주고 소비자를 속이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가짜 제품 유통에 대한 단속도 손쉬워진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거래되는 제품의 판매자 정보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소비자 항의나 고발이 접수되면 정부는 판매자를 쉽게 조사할 수 있다.

종이 영수증이 사라지면서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는 중국의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역에서 전자영수증이 통용된다면 매달 12만t 정도의 종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86만 그루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윤활유 역할 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전자영수증을 사용하는 기업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IT 기업 샤오미는 지난해 4월 21일 열린 대규모 할인행사 ‘미펀제’에서 전체 거래된 211만건 중 약 60%에 전자영수증을 발급했다. 중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차이나라이프’는 지난해 12월 30일 금융기관 최초로 전자영수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전자영수증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최근 알리바바 등을 중심으로 중국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르는 4억6100만명이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에서 전자상거래가 본격화된 2007년(4600만명)의 10배에 달한다. 이 기간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지속했다. 급기야 중국은 2013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시장으로 부상했고, 지난해 중국 온라인 시장 매출은 전체 소매 매출의 11%인 4530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언론들도 전자영수증 확산을 위한 여론몰이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유럽 미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전자영수증을 활성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딜레마=그러나 전자영수증을 통한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 매출액을 낮게 신고하고 세금을 적게 내는 수법으로 비용을 아낀 뒤 저가로 제품을 내놓던 영세사업자들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전자영수증을 발급하려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영업세 5%, 부가가치세 17%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대형 온라인 업체의 공습으로 영세사업자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이 같은 변화는 이들에겐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서서 추진 중인 ‘창업 붐’ 조성에도 창업비용 증가라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남효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13년 기준으로 전자상거래 종사자 중 47만명 정도가 사업자 등록을 안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자영수증 제도가 정착되면 이들 중 상당수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