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명가량의 그리스 유권자들이 5일(현지시간) 채권단 협상안 수용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에 나섰다. 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수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찬성과 반대는 43∼44% 수준에서 계속 박빙을 보였다.
그리스 시민들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56개 투표구의 투표소 1만9100여곳에서 운명의 한 표를 던졌다. 그리스 정부는 유권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날 주요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받지 않고 철도와 시외버스, 국내선 항공편 등의 운임을 할인했다. 일부 그리스인은 투표권 행사를 위해 귀국하기도 했다.
투표장에서 만난 연금생활자 야니스 콘티스(76)는 “돈 몇 푼 뽑으려고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이렇게 줄 서 있어야 하는 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말한) ‘품격’이냐”면서 “유럽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키프로스에 거주하는 그리스인 코스타스 코키노스(60)는 “투표하러 그리스로 돌아와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노년층이 채권단 협상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많이 나타낸 반면 청장년층은 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반대 의견을 표출해 세대 간 입장 차이도 뚜렷했다. 아테네 시민 엘레니 델리가이니(43)는 “반대표를 던졌다”면서 “지난 4년간 일자리 없이 살면서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왔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궁핍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한 표를 행사한 뒤 “내일 우리는 유럽의 모든 국민을 위한 길을 열 것을 확신한다”면서 “그 길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찾고 유럽을 통합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투표장에 나온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오늘의 투표는 그리스인들이 긴축정책에 대해 ‘최후통첩’을 날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투표 결과 찬성표가 더 많을 경우 그리스는 채권단과 3차 구제금융 협상에 다시 나설 수 있다. 20일로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 채무 35억 유로(약 4조3600억원) 상환을 이행하지 못하면 긴급유동성지원(ELA)은 중단되지만 협상이 20일 전에 타결되거나 협상 타결 전까지 유동성을 지원받는 ‘브리지론’에 합의하면 ECB 채무 상환 고비를 넘길 수 있다. 그럼에도 그리스는 긴축정책의 ‘가시밭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더불어 이 경우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돼 채권단의 협상 파트너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 협상안에 반대하는 결과가 나올 경우 그리스에 유리한 협상이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ECB 채무 상환은 불가능해지고 ECB의 자금지원 중단으로 전면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와 그리스 시중은행의 부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가시화될 수 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국민이 ‘반대’를 택한다면 다른 통화를 도입해야 할 것이고, 그 순간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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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0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