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사내 캠페인 포스터가 제작된 지 얼마 안 돼 폐기됐다. ‘소(牛)’를 등장시킨 게 문제였다.
롯데그룹 인재교육원은 지난 3월 배려와 칭찬을 독려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계열사에 배포했다. ‘칭찬과 배려의 말, 우리 모두를 힘나게 합니다’란 표어와 함께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문제가 된 것은 삽화였다. 포스터에는 황희 정승의 ‘검정 소 누렁 소 일화’가 그림으로 담겼다. 그림 속 황희 정승은 농부에게 “어떤 소가 일을 더 잘 하오”라고 묻는다. 이에 농부는 “선비님, 소도 듣습니다. 둘 다 저의 소중한 소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삽화를 보고 황희 정승은 경영진, 농부는 관리자, 소는 사원으로 해석된다며 “직원들을 소에 빗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A씨는 이 포스터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말단 사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는 것 같았다”며 “주변 동료들도 같은 반응”이라고 말했다. 다른 직원 B씨는 “딱 봐도 선비는 경영진, 농부는 중간 관리자, 소는 말단 직원으로 읽힌다”고 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칭찬과 독려 차원에서 만든 것인데 ‘직원을 소로 여긴다’는 일부 의견이 있어 포스터를 폐기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사원 C씨는 “지난주에도 사무실 앞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봤다”며 “무심코 만든 포스터가 사원들을 불쾌하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호 김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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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직원들을 “모두 소중한 소” 비유… 칭찬하려다 뿔나게 한 포스터
입력 2015-07-06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