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드리자면 오늘 소개할 남자는 국민일보가 그간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리즈에서 다룬 인물 중 가장 특이하다. 그는 오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는 취미 생활 때문에 언론에 수차례 소개됐다. 오리 조각상·그림·인형, 오리 캐릭터가 들어간 학용품과 장난감, 오리 그림이 담긴 수십 년 전 주택복권, 오리 무늬의 십자수…. 그에겐 이들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집품이자 인생의 보물이다.
그런데 이 남자가 2년 전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바로 십자가다. 남자는 주야장천 공방(工房)에 앉아 십자가를 만든다. 나무 돌 철 폐품 등 각양각색 재료로 제작한 십자가가 200점에 달한다.
주인공은 박상용(54) 집사. 경남 양산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은 그는 현재 양산의 감림산기도원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그의 자택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리 아빠’의 십자가 사랑=양산 한 시골마을에 있는 박 집사의 집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803㎡(243평) 대지에 지은 멋들어진 3층 주택이었다. 특이한 건 입구에 내걸린 간판. 간판에는 ‘오리박물관’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마당의 작은 연못에는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고 마당 한 쪽엔 오리배가 전시돼 있었다. 아기자기한 오리 조각상도 눈에 띄었다.
“2007년 대구 동천유원지에 놀러갔는데 오리배가 눈에 띄더라고요. 200만원을 주고 구입했죠. 오리배를 사겠다고 하니 오리배 주인도 신기해하더군요(웃음).”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이 곳곳에 펼쳐졌다. 건물 1·2층에 마련된 박물관엔 오리 관련 수집품 400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박 집사와 아내(53)는 건물 3층에 살고 있다. 그는 “간판을 보고 오리고깃집인지 알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오리고기를 제외한 오리와 관련된 세상 모든 걸 갖추고 있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박 집사는 과거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 등을 제작·설치하는 사업체를 운영해 번 돈으로 2006년 9월 박물관을 지었다. 오리 관련 물품을 수집하고 건물을 짓는 데 든 비용은 20억원. 기행(奇行)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 그는 양산 일대에서 ‘오리 아빠’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박 집사는 “남들이 안 하는 걸 하자는 생각에 오리 관련 용품을 마구잡이로 수집하며 살았다”고 했다.
오리에만 빠져 살던 박 집사가 십자가 만들기에 뛰어든 건 2013년 가을부터다. 지인이 목공에 관심이 많던 박 집사에게 다양한 크기의 다릅나무 자재를 선물한 게 발단이었다. 다릅나무는 껍질을 벗기면 겉은 희고 속은 갈색인 나무로 남부지방에서는 구하기 힘든 자재다.
“귀한 나무여서 버릴 수는 없고 뭐라도 만들자는 생각에 십자가를 만든 거죠. 그런데 그걸 시작으로 계속 십자가만 제작하게 되더라고요. 완전히 빠져든 거죠. 십자가를 만들다 보면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십자가 제작이 소명으로 느껴지더군요.”
◇“한국적인 십자가 만들고 싶어”=십자가에 빠지면서 그의 삶은 달라졌다. 오리 수집가에서 십자가 작가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오리에 미쳤던 것처럼 지금은 십자가에 미쳐 살고 있다”고 했다.
“제 머릿속에는 십자가 생각밖에 없습니다. 한겨울에도 마당에서 찬바람 맞으며 자재를 다듬고 공방에서 십자가를 만듭니다. 매일 밤 작업을 끝내고 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물론 오리한테는 미안하지요. 예전처럼 관심을 못 주고 있으니까요(웃음).”
박 집사는 “십자가를 만들다 보면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십자가를 만들면 예수님이 걸어간 길을 되새겨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포부를 묻자 “한국적인 십자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중엔 고택(古宅)을 해체한 뒤 버려진 낡은 마루판(板) 등을 활용해 만든, 한국인의 정서가 느껴지는 작품이 많다.
“저의 달란트가 십자가 제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오리 박물관을 만들었듯이 언젠가 십자가 박물관을 지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십자가 제작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양산=글·사진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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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⑪ ‘오리 아빠’ 박상용 집사 예수 사랑법
입력 2015-07-06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