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전남 순천시에 국내 첫 혁신형 어린이 놀이터 ‘기적의 놀이터’가 생긴다. 어린이 전용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 1호가 들어선 이 도시에서 또 하나의 상쾌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편해문(46)씨는 순천시가 주도하는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책임자다. 교육 담론의 포위 속에서 20년 넘게 아이들에게 놀이와 놀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놀이 운동가로, 놀이터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놀이 담론을 개척해 왔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소나무)는 새 책을 펴낸 편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소비가 아이들의 놀이가 됐고, 마트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분석이 우선 눈길을 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할 친구나 시간, 공간이 없다. 그러니까 주말이 되면 집집마다 바람 쐬러 마트에 가는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집 근처에 제대로 된 놀이터가 없다. 소비가 아이들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오직 살 때 행복을 느낀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마트나 쇼핑센터에 있는 유료 놀이시설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를 ‘놀이의 사유화’라고 규정했다.
“실내 놀이터, 키즈카페, 놀이방, 테마파크 등이 다 그렇다. 차를 몰고 가서 비용을 내고 아이들을 놀게 한다. 아이들을 놀게 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시민들은 공공 놀이터를 불신하고 있고, 동네 공터에 있는 놀이터들은 황폐화된 채 방치되고 있다. 아이들을 놀게 하려면 돈을 내는 곳을 찾아가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없는 집 아이들은 앞으로 어디서 놀아야 되나. 유료라고 해서 제대로 된 놀이터도 아니다. 실내고 공기도 안 좋고 화학적 소재의 놀이기구로 채워져 있다. 거기서 노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라. 다들 혼자 놀고 있다. 애들은 많은데 모두가 다 혼자다. 그건 놀이가 아니다.”
-결국 공공 놀이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얘기로 연결되는데.
“주변에 있는 놀이터를 좋은 놀이터로 바꿔야 한다. 한국에는 6만여개의 공공 놀이터가 있는데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저급화, 하향 평준화되고 말았다. 특히 놀이터를 유치원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초등학생들에게 안전하니까 놀라고 얘기하는 식이다. 아이들을 완전히 바보 취급하는 거다.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미친다. 그래서 놀이기구의 원래 용도에 거슬러 놀게 된다. 거꾸로 매달린다거나 지붕에 올라간다거나. 그러다 보면 사고가 난다. 너무 안전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사고가 나는 것이다. 놀이터가 한국에서는 조경업자들의 영역이다. 다 똑같다. 유럽에는 같은 놀이터가 없다. 놀이터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감수성과 창의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다.”
-“위험해야 놀이다” “위험이나 모험은 놀이의 아주 중요한 요소다”, 심지어 “작게 자주 다쳐야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책 제목도 ‘위험해야 안전하다’로 돼 있다.
“좋은 놀이터가 만들어지려면 위험 담론을 극복해야 한다. 위험과 모험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지루하기 그지없는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안전한 놀이터만 원하는데, 아이들을 너무 바보 취급하고 과잉보호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바보처럼 행동하게 된다. 아이를 과잉보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아이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 아이가 앞으로 잘 살아가야 할 게 아닌가. 삶의 동력, 삶의 생기를 다 탈색시켜 버리면 그 아이는 무엇으로 살아가나. 아이들이 살아가도록 하는 힘, 그게 놀이에서, 놀이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올해가 한국에서 ‘놀이터 담론’의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무슨 의미인가.
“대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놀이터 짓기에 뛰어들고 있다. ‘기적의 놀이터’도 생긴다. 공공 놀이터를 재생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유료 놀이터의 흐름도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하나의 토건사업으로 흘러갈까 걱정이다. 놀이터 짓기에 앞서 아이들과 놀이를 이해하는 게 꼭 필요하다. 예를 들면, 어른들이 보기에 좋은 놀이터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는 다르다. 놀이터를 쓰는 아이들은 목소리가 없고, 놀이터를 만드는 어른들은 놀이터를 쓰지 않는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어른들의 취향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게 놀이터 디자인의 최고 덕목이라고 본다.”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교육과 놀이를 반대로 보는데, 저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교육이 아니라 놀이에서 배운다고 본다. 아이들은 살아갈 지혜를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놀이터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는 걸 어른들이 인정해야 된다. 최소한 놀이를 교육과 같은 무게로 봐줄 수 있어야 한다.”
편씨가 만드는 ‘기적의 놀이터’는 놀이기구가 하나도 없는 놀이터다. 마을 뒷산에 터를 잡아 산과 내리막, 고목, 바위 등으로 구성된 놀이터를 만드는 중이다. 그는 지금까지 15권의 책을 냈다. 전국을 돌며 사라진 아이들 놀이와 노래를 수집하고, 아시아와 중동지역 아이들의 놀이를 취재하기도 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아이들이 살아갈 힘, 놀이에서 나온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펴낸 편해문
입력 2015-07-06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