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감정 외교와 실리 외교

입력 2015-07-06 00:30

최근까지 최악이던 한·일 관계가 6월 22일 양국 정상의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 교차 참석이 성사됨으로써 양국 관계 진전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 정상회담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협정에 못 박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건 한·일 청구권협정을 기반으로 한 한·일 관계의 기반을 흔들고, 전후 체제를 통째로 뒤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케이스를 인정했다가 중국, 동남아 등에서도 피해 배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나가이 가즈(永井和) 교토대 대학원 교수는 7월 2일자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위안소는 군의 시설’임을 공문서로 실증했다. 즉 ‘인신매매’의 주체가 일본군이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위안부 강제 연행을 몰라서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인정한 뒤의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한·일 양국의 급격한 국력 차 축소와 한국의 민주화가 ‘제2의 청구권협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1965년 청구권협정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한 나라는 없다고 항변한다. 이는 식민지 지배국과 피지배국 간 힘의 격차가 여전히 압도적이기 때문이거나 식민지 기간이 여러 세대를 걸치는 장기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식민·피식민의 한·일 관계는 이러한 국가들과 상황이 다르다.

첫째, 식민 기간이 35년으로 한 세대를 넘지 않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장기간의 식민 지배는 그 민족의 저항의식을 말살하지만 한 세대 남짓의 식민지 기간은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이었다. 둘째, 65년 협정 제정 시 일본의 경제력이 한국의 30배에 달하는 현격한 국력 격차로 양국 관계는 수직적 관계였으며, 이로 인해 청구권협정은 불평등 조약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은 양국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변질하고 있다. 현재의 수평적 관계에서 되돌아보는 65년 협정은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청구권협정에 대한 비판은 한국의 민주화로 인해 증폭되어 왔다.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한국에 제공된 돈은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성노예 범죄에 대한 배상금이 아니다. 5억 달러의 유·무상 경제 원조를 받는 것으로 ‘면죄부’를 준 산업화 정치세력을 민주화 세력이 공격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은 한국 내의 정치적 공방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감정적 대결은 서로에 대한 과소평가가 배경에 녹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는 왜 개선되어야 하는가? 장기적으로 국익을 추구하여 국력을 신장하는 것이 국가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외교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국가이익에 대한 냉철한 계산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최상위 외교 목표는 통일을 통한 강대국 건설일 것이다. 통일강국 건설을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통일에 대한 반대가 없어야 한다. 현재의 악화된 한·일 관계가 고착된다면 일본 여론은 한반도에 반일적인 통일국가 탄생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통일국가 탄생 후에는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필요한데, 이때 거액의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가장 확실한 것은 일본의 자금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시에 일본이 한국 정부에 제공했던 5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이 같은 이유로 북한 지역에도 투입될 것이며 그 액수는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일본 내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일본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