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한국사회, 용기가 좀 더 필요하다

입력 2015-07-06 00:46

전문용어인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요즘 일상어가 됐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참담함을 경험했고, 요즘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탓에 또 한 번 난리를 겪고 있어서다. 메르스 사태는 이제 수습 국면에 들어섰지만 여전한 두려움과 불신이 트라우마를 부르고 있다.

트라우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개념화한 이래 정신분석학의 초석이 됐는데 동시대의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개념이 과거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원인론에 매몰된 것에 불과하며 현재의 선택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 등은 아들러 심리학에 기초한 저서 ‘미움 받을 용기’(2013)에서 “우리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불안 탓이 크다. … 우리에게는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솔깃한 지적이다. 아픈 기억들,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사태와 거푸 맞닥뜨리면서 지쳐버린 우리 사회가 인과론·결정론에서 벗어나 제대로 현재를 살기만 한다면 그 선택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니 말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세월호·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결정론적인 자조감에 깊이 빠져 있다. 트라우마로부터의 탈피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선택은 기대 이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예컨대 1997년 택배업이 자유화되면서 택배산업은 급성장했다. 97년 택배물량 1억6000만개는 2013년 15억개로 늘었고, 택배업 종사자는 4만여명에 이른다. 우체국에만 맡겨뒀더라면 결코 생기지 않았을 일자리가 그렇게나 많다.

정부가 메르스 등으로 인한 내수 부진 등을 막기 위해 추경예산을 포함해 총 22조원의 긴급자금을 쏟아 붓는다고 발표했으나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트라우마를 의식한 결정론적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위한 자금 공급이 우선돼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는 ‘메르스-가뭄-서민생활 안정 지원’을 주요 목표로 삼는 모양이나 그것은 지나치게 과거를 의식한 것일 뿐 새로운 목표와 연계돼 있지 않은 듯하다.

발상을 바꿔야 한다. ‘2014년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한국의 직업 수는 1만1440개인데 반해 미국은 3만여개, 일본은 2만5000여개나 된다. 미·일 선진국에는 번듯하게 있는 직업이 한국에는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주요 50개 업종 중 한국 기업이 진출한 분야는 겨우 10개 분야에 불과하다. 40개 업종에 대한 진출, 새로운 직업 발굴이 펼쳐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국내외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환경적 제약요인은 급속한 고령화, 정보통신기술(ICT) 급팽창, 중국·인도·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부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새로운 선택의 계기로 삼아야 옳다. 이를 각각 고령화와 실버산업, ICT와 연계한 신산업, 아시아 중시 비즈니스 등으로 엮어낸다면 제약은 곧 기회로 바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의료 선진국 한국의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맞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겪은 실패와 극복 스토리를 낱낱이 밝혀 국제사회에 보고한다면 신종 감염증 방역체계의 한국형 모델로 주목받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선택하기 나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그 자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