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공자, 맹자, 노자, 그리고 장자? 그런데 장자는 좀 결이 다른 것 같은데?”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단다. 친구가 흘깃 보더니 “미친 넘.” 하더란다. ‘매란국죽’을 못 떠올리던 그 사람은 합격이 되었고 친구는 떨어졌단다. 어느 언론사 기자 시험에서 있던 실화란다.
며칠 전 들은 이 이야기에 배꼽을 잡았다. ‘사군자(四君子)’라니까 군자를 떠올렸던 그 사람은 평소 군자의 길을 엄청 고민하던 진지한 사람이었던가, 이른바 문인의 고급 취미인 ‘사군자 치기’ 같은 것은 관심조차 없던 사람이었던가?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군자는 ‘공자, 맹자, 놀자, 먹자’라고 한다네.” 착잡해진다. 공자, 맹자와 놀자, 먹자가 어쩌다가 섞였을까? 차라리 놀자, 먹자 유로 사군자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놀자, 먹자가 대세이지만 여전히 공자 연, 맹자 연 하기는 해야 살아남는다는 뜻인가? 속마음은 놀자, 먹자이고 겉으로는 점잔을 떨어야 하는 세태를 비꼬는 것인가?
사군자의 근본은 소신과 기개다. 매화는 꽃으로 추위를 깨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도 향을 퍼뜨리고, 국화는 첫 추위에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눈 속에서도 푸르다. ‘덕과 학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뜻을 세우고 뜻을 전파하고 뜻을 꺾지 않는 사람을 그리고 기리는 것이다. 이런 군자가 얼마나 없었으면 ‘사군자’로 칭하며 군자의 길을 강조했을까. 또 군자의 뜻을 꺾게 만드는 권력 투쟁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또 사군자를 멋지게 치면서도 얼마나 권력에 굽혔을까.
이 시대 우리의 사군자는 어떤 것일까,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놀자, 먹자, 여행가자, 쇼핑하자’ 같은 시류는 싫증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일하자, 공부하자, 이기자, 최고가 되자’ 같은 강박에 빠지기도 싫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비록 군자라는 말을 자주 쓰는 세태는 아니지만, 소신 있고 기개 있는 군자를 우리는 늘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다. 어떤 세파에도 부디 꽃을 피우고 향을 퍼뜨리는 이 시대의 군자를 기다린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이 시대의 사군자
입력 2015-07-06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