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각에서 ‘찰칵’… 1950∼60년대 美 표정, 같은 공간에서 만나다

입력 2015-07-06 02:39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 1950∼60년대 미국 대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이 대상이다. 마이어의 자화상에선 보모로 살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갈망했던 자의식이 읽혀진다. 성곡미술관 제공
게리 위노그랜드의 ‘여성은 아름답다’. 1950∼60년대 미국 대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이 대상이다. 위노그랜드 작품에서는 남성의 시선에서 포착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읽혀진다. 성곡미술관 제공
이질적인 세계를 살다 간 두 명의 ‘거리 사진’ 작가가 담은 미국의 1950∼60년대 풍경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거리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나와 거리나 공원, 쇼핑센터 등 공공장소의 연출되지 않은 실제 상황에서 인간을 촬영한 사진을 말한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은 미국의 베일에 싸인 보모 출신 여성작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내니의 비밀전’과 생전에 명성을 누렸던 남성작가 게리 위노그랜드(1929∼1986)의 ‘여성은 아름답다’전을 동시에 갖고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 하지만 서 있던 자리가 달랐던 만큼 그들의 카메라가 담은 1950∼60년대의 시대적 표정은 사뭇 다르다.

먼저 마이어. 직업은 내니(nanny), 즉 보모였다.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살았던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지인인 사진작가 잔느 베르트랑과 한집에서 지낸다. 사진과의 첫 인연이었다. 불우했던 그녀는 한때 미싱사로 일했으며 20대 후반부터 남의 집에 들어가 평생을 보모로 살았다. 근거지가 뉴욕에서 시카고로 바뀌었고, 코닥 브라우니에서 롤라이 플렉스로, 다시 라이카로 기종이 바뀌었을 뿐, 돌보는 아이들 손을 끌고 집 밖을 나서는 그녀의 목에는 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웃들, 아이들, 사건의 현장을 담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표정도 즐겨 찍었으니 셀피(자가촬영사진)의 원조다. 집 주인이 내준 개인 욕실을 암실로 개조하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찍었지만, 생전에 한번도 전시를 연 적은 없었다.

사진기자인 집주인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 마이어. 묻힐 뻔 했던 그녀는 세상에 우연히 알려지게 됐다. 말년에 자신의 짐을 창고에 보관했는데, 창고료를 내지 못해 개인 짐이 2007년 싸구려 동네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이게 미국 역사책에 쓸 값싼 사진을 구할 요량으로 경매를 뒤지던 부동산업자 존 말루프의 눈에 띤 것이다. 단돈 몇 백 달러에 사들인 상자에는 12만 여장에 이르는 필름과 녹화물, 잡다한 사진이 들어있었다. 말루프가 이를 SNS에 올리면서 무명의 사진작가 마이어의 진가는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쇼윈도 등에 비친 그녀의 얼굴 사진에서는 내면의 고독과 강한 자의식을 읽을 수 있다. 신문가판대, 경찰차에 수송돼 감옥으로 들어가는 목발의 남자 등 그녀가 담은 시대는 남루하다. 하지만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따스하다. 아이들은 대체로 꾀죄죄하지만 눈망울은 맑다. 치마가 펄럭이는 뚱뚱한 여성의 뒤태, 벤치에 엉덩이 살이 삐져나온 중년 남자 뒷모습 등 해학 넘치는 장면도 있다.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커크 더글러스, 오드리 햅번도 그녀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두 번째 위노그랜드. 유태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콜롬비아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사진을 배우기도 했다. 26세 때인 1955년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구겐하임미술관의 장학금을 세 차례나 받아 미 전역을 횡단하며 미국인의 일상을 기록했다. 뉴욕현대미술관은 그가 수십 년 거리와 공원에서 몰래 찍은 사진 중 여성의 패션, 스타일, 태도 등을 보여주는 85점을 선정해 ‘여성은 아름답다’ 사진집을 냈다. 이번 전시에는 사진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총출동했다. 산업화와 페미니즘의 세례를 동시에 받은 그 시대 미국 여성은 분방했다. 담배를 피우고, 바삐 걷고, 과감히 노출했다. 수영장, 카페테리아, 상류층의 사교파티, 뉴욕 거리에서 찍은 여성은 일견 당당해 보인다. 하지만 남성의 시선이 깔려있다. 이를테면 여성의 노출 부위를 흘깃 보는 남자가 같이 포착되는 식이다. 스페인의 전시기획자 롤라 가리도의 평은 정확하다. “그는 패션, 헤어스타일, 제스처, 웃음, 혹은 수다를 떨고 있는 여성들의 일상적 모습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9월 20일까지. 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02-737-765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