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발레 인생 꽃 피우다] 발레리노 후배들의 선구자 ‘김용걸’ 도전의 삶… 주목받는 안무가로

입력 2015-07-06 02:30 수정 2015-07-06 18:05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노에서 안무가로 성장하고 있는 김용걸이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자신의 안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김용걸(42)과 김주원(37)은 2000년대 한국발레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이다. 1995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김용걸은 김지영과, 98년 들어온 김주원은 이원국과 콤비를 이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이후 김용걸은 동양인 발레리노로는 처음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약하다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귀국했다. 김주원은 국내에서 활동하면서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2006년을 받고 2013년부터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느덧 발레계의 중견으로 자리 잡은 두 사람은 여전히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김용걸은 발레리노 후배들에게 선구자 같은 존재다. 1997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무용수로는 처음 3위에 입상한 그는 이듬해 김지영과 함께 파리 국제무용콩쿠르 듀엣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2000년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하는 모험을 택했다.

입단 5년 만에 쉬제(솔리스트)가 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 2009년 한국에 복귀했다. 후학을 양성하며 발레리노로서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는 그가 새롭게 도전한 것은 안무다. 2000년 낭만발레 ‘지젤’을 새롭게 해석한 ‘지젤-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시작으로 안무에 나섰고 무대에서 발레 동작들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 ‘워크’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비애모-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빛 침묵 그리고…’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세련된 감각을 뽐냈다.

그는 “나이를 비롯해 어깨와 발목 부상 때문에 무용수로서 신체적 한계에 다다른 것도 일부 있지만 점점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지’를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안무에 눈을 돌리게 됐다”면서 “아직은 안무가로서 더 배우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겸손해 했지만 그는 괜찮은 발레 안무가가 적은 한국에서 이미 주목받는 위치에 올라섰다. 우리나라 발레계 최대 축제인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2011년 1회부터 올해 5회까지 모두 참가한 단체는 김용걸댄스시어터가 유일하다. 특히 지난해 ‘워크 2S’와 올해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로 2년 연속 개막 무대를 장식했다.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된 ‘인사이드 오브 라이프’는 올해 초 그에게 무용예술상 안무상을 안겨줬다.

다만 일각에는 ‘워크’ 시리즈가 초반의 전체 구성이나 조명 활용 면에서 거장 윌리엄 포사이스나 이리 킬리안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워크’ 시리즈는 원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며 “따라서 두 거장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고, 작품 설명에서도 밝혔다. 변명 같지만 창작도 처음엔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안무가로 3명을 꼽는다. 포사이스와 킬리안 그리고 피나 바우쉬다. 특히 바우쉬는 춤에 대한 김용걸의 태도와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피나의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과거엔 테크닉을 단련하는데 몰두했었는데, 피나 덕분에 움직임 이외의 중요한 것들을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제 유럽에도 발레 안무가로 소개될 예정이다. 지난 1일부터 이탈리아의 세계적 휴양도시 꼬모에서 열리는 ‘꼬모 음악 페스티벌’에 고전발레 갈라(15일)와 ‘인사이드 오프 라이프’(17일)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페스티벌 예술감독이 그의 작품 영상을 보고 제안한 것으로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 참가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