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퓰리처상의 금년도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미국 지역지 ‘포스트 앤드 큐리어(The Post and Courier)’의 가정폭력에 대한 심층보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 시리즈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표현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란 표현과 함께 영원한 사랑의 맹세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보도에서는 죽어서야 비로소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실제 지난 10년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300명 넘는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기 소지가 일상화되어 있는 미국의 특성을 감안할 때 물 건너 먼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실태를 보면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간 갈등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간간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그 심각성에 대한 무거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정폭력은 가족 간 단순한 갈등 표출이나 다툼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방적 폭행으로, 사회적 문제이자 엄연한 범죄다. 하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쉽게 화해한다), ‘부부싸움은 개도 안 말린다’(간섭하지 마라)라는 속담과 같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가정폭력을 ‘남의 집 가정사’ 쯤으로 여기고, ‘가족끼리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관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가정폭력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의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찰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홍보와 더불어 가정폭력 현장 출동을 의무화하고 응급조치·긴급임시조치 등 초동 조치를 강화하였다. 또한 ‘가정폭력전담경찰관’과 ‘여성청소년수사팀’을 신설해 수사부터 피해자 보호까지 모든 과정을 일원화하는 가정폭력 전담 대응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모든 신고에 대해 다음날 재조사를 실시하고, 피해 가정에 대한 종합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례회의를 개최하는 등 가정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가정폭력 신고가 2013년 16만건에서 2014년 23만건으로 크게 늘어나고, 응급조치나 긴급임시조치 등 피해자 보호조치 건수도 많이 증가했다.
지난 1일부터는 개정된 ‘가정폭력범죄 등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어 경찰의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한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변안전 조치에 대한 근거 규정도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경찰도 접근금지명령 등을 위반하는 가해자에 대해 보다 엄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피해자 보호 활동도 한층 강화할 예정이다.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가정 내 문제가 아니다. 가정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국가와 사회 등 모두의 힘을 모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씨앗이 된다. 이 씨앗이 움터 대한민국에서 가정폭력이 사라지고, 모든 가정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이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대변하는 말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의 맹세로 자리 잡을 그날을 기대해본다.
강신명 경찰청장
[기고-강신명]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입력 2015-07-04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