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수사 결과] 성완종 前 회장 삶 재구성… 쉼 없는 로비 한국 사회의 검은 뒷면

입력 2015-07-03 02:42
문무일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이 2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그의 삶은 쉼 없는 로비였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비서진으로부터 현장전도금 등 자금 인출 보고를 받을 때 컴퓨터 엑셀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못하게 했다. 연필로 쪽지에 적어 보고를 올리게 하고, 읽어본 뒤엔 즉각 파쇄해 버렸다는 것이 성 전 회장을 보좌한 경남기업 전·현 직원의 말이다.

성 전 회장의 꼼꼼한 ‘로비법’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폭로한 내용을 뒷받침할 비밀장부 따위를 남기지 않게 만들었다. 따라서 ‘성완종 리스트’의 대부분은 확인할 길이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게 됐다. 다만 의혹 규명을 위해 촘촘히 재구성된 성 전 회장의 행적은 여전히 한국 사회가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성 전 회장이 홍준표(61) 경남지사에게 건넸다는 1억원은 그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려는 잘못된 수단이었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건설업계 성공신화를 쓴 성 전 회장은 정계 입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애썼다. 2000년 4월 제16대 총선부터 매번 의원직을 노린 성 전 회장은 ‘4수’ 끝에 2012년 4월 제19대 국회의원이 됐다.

고향인 충남 서산·태안을 자주 방문하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을 준비하던 2011년 5월, 성 전 회장은 위험한 선택을 했다. 홍 지사가 당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1억원을 전달한 것이다. 홍 지사의 당대표 경선 캠프에 참여했던 당시 경남기업 사외이사 윤승모(52)씨를 통했다. 정작 성 전 회장은 이듬해 한나라당 공천을 못 받았고,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으로 급히 당적을 바꿔 당선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나라당의 공천 거부 이유는 성 전 회장의 로비 이력이었다. 2004년 불법 정치자금 공여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게 문제였다. 로비의 죗값을 치르던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73)씨에게 로비를 펼쳐 형을 모면했다. 김모(60) 전 경남기업 상무는 “성 전 회장의 지시로 특별사면 직후 노씨에게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최근 수사팀에 진술했다.

성 전 회장은 노씨의 고향 후배인 김 전 상무를 애초부터 로비스트 목적으로 채용했다. 2003년 입사 뒤 김 전 상무의 첫 부임지는 노씨 주거지 근처 현장이었다. 성 전 회장의 선견지명인지 김 전 상무는 오래지 않아 또 한번 성 전 회장의 특사 로비를 수행하게 된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11월 행담도 개발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은 다음 달 김 전 상무를 노씨에게 세 번 보내 “좀 더 챙겨드리겠다”는 말을 전했다. 경남기업은 노씨 지인의 건설사에 하도급 공사비 5억원을 증액했고, 성 전 회장은 2008년 1월 돌연 특사 명단에 포함됐다.

성 전 회장의 의정활동은 또 다른 청탁의 삶이었다. 금융 당국을 감독하는 국회 정무위원으로 있던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의 구조조정 담당 고위 간부와 결탁했다. 이 금감원 간부는 성 전 회장에게 승진 청탁을 하며 검은 공생관계를 이어갔다.

검찰 수사에 맞닥뜨린 성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던진 승부수도 로비였다. 성 전 회장은 지난 4월 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가 자신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보좌진을 불러 “윤승모 전 부사장을 찾아가겠다”고 선언했다. 홍 지사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주변에 퍼뜨리는 한편 리스트 인사들을 포함한 정치권에는 광범위한 구명 로비를 벌였다. 이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