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그리스] ‘국민투표’ 치프라스, 협상카드-메르켈, 새 판 짜기… 두 남녀 ‘딴 마음’

입력 2015-07-03 02:38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1일(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카페에서 한 시민이 고통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채권단에 새 협상안을 제출했으나 독일 등의 강경 입장과 부딪치면서 예정대로 찬반 국민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들에게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을 호소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가운데 그리스 고등교육기관인 아테네 아카데미의 지붕에서 그리스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두고 1일(현지시간) 열린 유로그룹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의 협상안 찬반 국민투표 전엔 협상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투표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로 협상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속셈인 반면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국민투표를 ‘새 판을 짤 기회’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리스 측은 새 제안에서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연금 삭감 부분에 대해선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2019년 말까지 보충연금을 없애는 것에 동의했다. 부가가치세 부과 체계를 개편하고 전기요금과 약품 구입비, 호텔 등에도 추가로 부가가치세를 물리라는 채권단의 요구도 모두 받아들였다. 다만 도서지역에 대해서만 부가세율을 30% 인하할 것을 제안했다. 국방비 예산 가운데 4억 유로를 감축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2017년까지 4억 유로 수준의 군비 지출 축소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의 표시’에도 독일이 강경한 입장을 바꾸지 않자 치프라스 총리는 사임을 불사하고 맞불을 놨다. 치프라스 총리에 이어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2일 언론 인터뷰에서 “(채권단이 제시한) 새로운 협약에 서명하는 대신 차라리 내 팔을 자르겠다”며 “국민투표에서 새 협약에 찬성이 나오면 장관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리스가 유로화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예상에 대해선 “유로화를 도입하면서 드라크마(그리스의 옛 화폐)를 찍어내는 인쇄기를 모두 폐기했기 때문에 드라크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메르켈 총리와 입장을 같이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다른 국가들의 선례를 보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힘든 개혁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그리스 측이 더 양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민투표 결과는 여전히 예측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 말 카파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47.2%, ‘반대’ 33.0%로 나타났지만 자본통제 이후인 30일 프로라타의 조사에서는 ‘반대’ 54%, ‘찬성’ 33%로 뒤집혔다. 여론조사기관 GPO가 이날 발표한 결과에서는 다시 ‘찬성’ 47.1%, ‘반대’ 43.2%로 뒤집혔다. 로이터 통신이 월가 ‘큰손’ 투자자 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5명이 ‘찬성’ 결과를 예측한 반면 이코노미스트 정보분석팀은 투표결과가 ‘반대’로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아일랜드의 도박업체 패디파워는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베팅을 벌인 결과 85% 이상이 ‘찬성’ 쪽에 돈을 걸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협상은 그리스 유럽중앙은행(ECB) 채무 상환 만기일인 20일 이전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바루파키스 장관 역시 “채권단이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면서도 “투표 직후 협상은 타결될 것이며 현재의 은행영업 중단 조치도 풀릴 것”이라고 말해 물밑 조율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는 기대감을 낳았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Caa2’에서 ‘Caa3’로 한 단계 내렸다. Caa3는 디폴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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