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심민영(사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심리위기지원단장은 최근 완치된 퇴원자의 집을 찾아갔다. 집 안에서 의료진과 격리 대상자들이 쓰는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완치가 됐는데도 마스크를 안 벗으세요. 그 답답한 N-95를요. 그걸 끼고는 상담을 못하거든요. 땀이 송송 맺히는데도 안 벗고, 저보고도 마스크를 쓰라고 하셨어요.”
이 퇴원자는 혹시라도 바이러스가 자신의 몸에 남아 있어 병을 옮길까 불안해했다. 심 단장은 메르스를 앓았던 사람들이 ‘완치’에 확신을 못한다고 했다. “다들 메르스를 불확실한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정말 다 나은 게 맞나 하는 거죠.”
2일까지 메르스 감염자 183명 가운데 102명이 퇴원했다. 이들은 유전자 검사에서 두 차례 ‘음성’이 나와 완치 판정을 받았다. 몸은 나았지만 마음까지 온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다. 사망자 33명의 유가족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 전문 간호사 16명으로 구성된 정부 메스르 심리위기지원단은 이들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집에서 N-95 마스크를 쓰고 있던 퇴원자는 후유증이 심각하다. 외출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있다. 심 단장 앞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퇴원자 상당수는 자신에 의한 추가 감염을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 재난상담 전문가인 심 단장에게도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자기 가족만 생각할 줄 알았거든요. 다른 사람이 감염돼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당할까봐 걱정하시더군요. 다른 한편으로는 (전파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워낙 강한 탓도 있어요. 나 때문에 누가 걸렸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감염자’인 동시에 ‘전파자’인 이들은 경계심이 매우 강하다. 지원단에서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다 필요 없다. 나는 정말 괜찮다. 지금은 내버려둬 달라’는 것이었다. 심 단장은 이들과 신뢰를 구축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그동안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던 분들은 저희와 통화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합니다. 누군가 자꾸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저희도 그중 하나가 돼버린 것이죠.” (심 단장은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 상담 여부를 묻자 “개별 사례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못을 박았다)
대개 전파자들은 자신을 통해 바이러스가 옮겨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렵게 상담이 시작되면 이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토로한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이사를 가야겠다”며 불안해한다. “예전처럼 생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우울감도 표출한다.
메르스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을 넘어 분노와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 이들은 상담 과정에서 ‘우리 부모 살려내라,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며 분노를 표시한다. 보건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를 따지기도 한다. 대부분 임종과 장례식을 못해 자식 도리를 못했다고 자책한다. 특히 평소 지병이 없거나 병문안 갔다가 감염돼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은 죽음을 더 못 받아들인다. 심 단장은 “‘유골함이 옆에 있어도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비통해 한다”고 전했다.
나이가 많고 지병이 있던 사망자라고 해서 유가족 슬픔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지원단의 전경선 부팀장은 “연세가 많은 분도 가족 입장에선 하루라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셨다는 것도 유가족에게는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유가족은 대부분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어떤 유가족은 화장을 마친 유골함을 아직도 집에 보관 중이다. 가족이 다 격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부고를 냈을 때 과연 조문객이 장례식장에 찾아올까도 유가족의 걱정이다.
심 단장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심리 지원을 했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 세월호 때는 유가족을 도우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번엔 메르스 유가족이라면 겁을 내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아요.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는 메르스 전파자에 대한 일부의 비뚤어진 시선을 속상해했다. “누구도 메르스에 걸리고 싶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던 사연이 있고요.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 갖고 속단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인터뷰] 심민영 심리위기지원단장이 전하는 메르스 트라우마
입력 2015-07-03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