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떠나세요, 그 길에서 당신의 가스펠을 만날 겁니다”

입력 2015-07-04 00:02
문종성이 2010년 아프리카 말라위 한 마을에 모기장을 설치해준 뒤 어린이와 손가락을 서로 맞추며 웃고 있다. 문종성 제공
문종성이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미소 짓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7년 2개월 동안 전 세계 112개국 약 7만㎞를 자전거로 여행한 문종성(34). 그는 "나도 '불안의 시대'를 사는 청년이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지 않나.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을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사랑받는 존재이지, 성공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게 무엇인지 배우자"고 했다.

문종성은 "떠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재료로 성경의 말씀을 실험해 보라"며 청년들에게 여행을 권한다. 지난해 1월 긴 세계일주를 마친 문 작가는 같은 해 2월부터 1년여 동안 본보에 여행기 '가스펠로드'를 연재했다. 자연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배운 그는 이제 신학교에서 성경 속 진리를 배우고 있다.

“이 지구에서 주님 기뻐하실 일을 찾아라”

그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본사에서 만났다. 179㎝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건장한 청년이었다. 왜 떠났는지 물었다.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나도 취업대란 속에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세상이 나에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조용히 반기를 들고 싶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자전거로 세계 비전트립을 떠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현실 도피’라고 할 수도 있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를 답변이다. 그는 “청년들에게 ‘이 지구 어딘가에 하나님께서 당신만을 위한 일을 마련해 놓고 당신이 그걸 찾기 바라시고 계신다’고 말하고 싶다. 꿈을 도피하는 것이 현실을 도피하는 것보다 더 비겁하다. 비전이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비전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출발할 때 은행 잔고는 300만원에 불과했다. 경비 마련이 쉽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이나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교통비 등 기본적으로 드는 돈이 많았다. 지인들이 십시일반 보탰다. 여행 중 여러 잡지사 등에 투고를 했고 원고료를 받았다. 가난하게 여행을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조금씩 경비가 들어올 통로를 열어 주셨다.”

그는 이 긴 여행에서 인간 내면의 순수함을 자주 목격했다. 2010년 아프리카 모잠비크 북부에서 있었던 일(2014년 11월 8일자)이다. 한 마을 아낙네들이 하루 2∼3차례 지나가는 버스 승객에게 음식과 음료 등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악을 쓰며 떠나는 버스를 뒤쫓아 가 세우는 걸 봤다.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승객들에게 줬다.

“그 아낙네들이 돌아오면서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마구 웃었다. 울컥했다. ‘어? 그냥 가버리네. 횡재했네’ 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내가 힘든 만큼 상대도 힘들다는 걸 아는 것 같다. 그렇게 애를 쓰면서 버스를 쫓아가 기어이 거스름돈을 주더라. 아프리카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탄자니아 오지 음타에 마을에서의 일이다. 한 음식점에 가방을 두고 숙소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가방엔 여권, 지갑, 노트북 등이 들어 있었다. 식당 주인은 돌아온 그에게 가방을 돌려주며 말했다. “당신이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지요. 우리 마을은 모두 좋은 사람들만 있어요.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아요. 당신의 여행은 모두 잘될 겁니다.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다 잘될 거예요)!”

은혜 나누지 않는 한국교회 ‘직무 유기’

그리스도인 안의 사랑을 누린 적도 많다. 2009년 아르헨티나 산타 로사 한 교회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내밀었다. ‘주 안의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겨울 눈보라 치던 밤 조지아 자르즈마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수도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그를 난로 앞으로 안내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2012년 부르키나파소서 가나로 향하던 밀림(4월 25일자)이었다. 탑승했던 버스에 총알 다섯 발이 관통했다. 무장 강도였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마주하자 머릿속엔 죽음, 천국, 그리고 어머니 이 세 단어만 맴돌았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외에 나를 위로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는 살아남았다. 평온한 가나 거리에서 코카콜라를 마셨다. 살아있다는 단 한 가지에 대해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여행 중 내게 왜 그렇게 많은 은혜와 감동을 주셨는가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과 그 은혜와 감동을 나누라는 뜻인 것 같다. 나눔으로써 진리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은혜를 대하는 가장 이기적인 태도가 ‘나만 누리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한계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크리스천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누군가와 나눠야 한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의무다. 한국 교회에는 큰 은혜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교회 안에 가두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교회가 사회 곳곳의 소외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눴으면 좋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하나님 뜻을 이루지 않았나.”

여행 중 가정에 대한 소망도 생겼다. 아름다운 가정의 공통점을 발견하면서다. “여행지에서 많은 가정의 초대를 받았다. 따뜻하게 나그네를 맞는 가정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소 짓고, 남편에게 다정했다. 낯선 손님에게 친절했다. 나도 그런 아내를 맞아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싶어졌다.”

지구에서 성경으로 ‘교과서’ 이동

본지 연재를 통해 그는 7년 동안의 여정을 다시 돌아봤다. “여행 중 쓴 일기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때 느낀 복음의 진리 대로 살고 있는가 되물었다. 이제 ‘가스펠로드’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가치에 굴복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지켜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2008년 방문했던 쿠바를 지난달 다시 여행했다. “사람들의 미소는 여전했다. 7년 전 외국인 숙소의 숙박비가 25CUC(한화 4만원)였는데 똑같았다. 물가가 비슷한 것이 신기했다. 국교 정상화 영향인지 미국인 여행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인 후손들도 반가웠다. 아직도 날 기억해줘서 기뻤다. 한국 문화를 지키는 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서울 오륜교회 청년부 전도사이도 하다. “하나님이 성경뿐만 아니라 나무와 꽃들, 구름과 별에도 말씀을 기록했다고 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말이 여행의 한 시작점이었다. 여행에서 배운 것들을 전하기 위해서나, 크리스천으로서 무엇을 하기위해서나 신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연에 기록된 말씀 공부를 마치고 이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공부한다. ‘처치로드(Church Road)’에 서 있는 셈이다. “가스펠로드에서 누린 은혜와 진리가 내 ‘심장’에 있다.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인지, 진정한 교회인지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됐다.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오는 곳이다. 구제 불능의 사람들이 구제 받는 곳이 교회이다. 그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는 교회 청년부 지도를 하고 외부로 가 청년 대상 강의도 자주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청년들과 함께 고민한다. 다음 세대가 깨어 있어야 한다. 선교여행이나 수련회를 통해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보길 권하고 싶다. 여행지에서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늘 시험하여 보라(엡 5:10)’는 말씀을 시험해 볼 수 있다. 내 경험의 교훈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