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통념이라는 시선

입력 2015-07-03 00:20

지하철역 승강장에 서 있는데, 시선을 돌릴 때마다 어쩐지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하지만 곧 내 앞에 서 있는 여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웨이브가 있는 짧은 은발에 기품 있는 용모였고, 연배가 예순은 훌쩍 넘어 보였다. 길이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좁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자리를 옮기거나 몸을 조금 움직일 때마다 스커트의 옆트임이 깊게 갈라지면서 다리가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 보였다.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흘낏 보이는 그녀의 다리는 하얀 피부에 각선미도 고왔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게 불편했다. 한편, 그 상황을 불편해하는 내가 불편하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일까? 승강장에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훤히 드러낸 채 서 있는 아가씨들도 여럿 있었음에도 그들을 보는 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노인’에 해당하는 여성에게서 흔히 섹시하다고 표현하는 느낌을 감지하는 게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낯설 수는 있어도 왜 불편하기까지 했던 걸까? ‘그 나이’에 ‘그런’ 옷차림을 한 것으로부터 ‘그 나이’에 여전히 ‘그런’ 욕망이 읽히는 게 불편했던 걸까?

나는 노인이라면 성적 욕망 같은 건 드러내지 않는 점잖은 옷을 입어야 마땅하다는 통념의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배제할 때는, 대상이 되는 사람이 고통과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욕망을 가질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노인, 장애인, 동성애자, 노동자, 아줌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이름들 뒤에 따라다니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는 생각들,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무심코 받아들인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나도, 야한 옷을 입은 노인을 불편하게 바라보게 된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