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1일(현지시간) 양국 대사관 재개설에 합의, 외교관계 복원을 공식 선언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공산혁명을 이유로 1961년 1월 3일 쿠바와 단교한 이래 54년 만에 적대 관계를 청산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양국 대사관 개설 합의는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 선언에 합의한 이후 6개월 만이다. 미국이 중국 베트남에 이어 쿠바와도 국교를 회복함에 따라 냉전시대 적대국 중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미국과 쿠바가 대사관 개설에 합의함으로써 양국 간 국교 정상화가 본궤도에 올랐다. 대사관 개설 합의는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의 허가나 간섭 없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외교관계 복원 조치이다. 현재 양국이 상대방 수도에 운영 중인 이익대표부가 대사관으로 격상되며 이후 대사가 임명된다. 외신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카스트로 의장에게 오는 20일 양국 수도에 대사관을 재개설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쿠바 당국을 인용해 전했다.
대사관 개설에 합의했더라도 양국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까다로운 문제가 남아 있다. 지난 5월 말 미국 정부가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33년 만에 해제함으로써 쿠바가 미국 측에 요구하는 대사관 개설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해결됐다. 그러나 쿠바가 미국에 바라는 궁극적인 요구 조건은 자국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다. 카스트로 의장도 “금수조치의 해제 없이는 미국과의 관계 회복이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한 바 있다.
금수조치 해제는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직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으로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쿠바는 이와 함께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반환도 선결 과제로 요구해 왔다.
미국은 쿠바의 인권 문제 해결과 피델 카스트로 혁명 정부 수립 당시 미국인과 미국 기업들로부터 몰수한 재산의 반환과 보상 등을 협상 현안으로 내걸고 있다.
2016년 대선전에서도 쿠바와의 국교정상화가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역시 쿠바계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마르코 루비오(공화·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쿠바에 대한 금수 해제를 반대한다면서 쿠바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쿠바 주재 미국대사의 인준을 막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7년 초 퇴임 이전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2008년 대선 후보시절부터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정치적 승리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신속한 타결을 위해 필요한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의 미 의회 통과에 이은 1주일 만의 ‘외교 업적’이다.
지난 25일에는 연방대법원이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 대한 보조금이 합법이라고 판결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30일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 파문으로 불편했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간 완전한 관계 회복을 선언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2013년 10월 미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NSA가 자신의 이메일과 전화통화 기록을 훔쳐본 사실이 드러나자 방문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고의 순간’은 지지율 회복으로 입증됐다. CNN이 30일 여론조사기관 ORC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0%를 기록, 2013년 5월 이후 2년여 만에 50%대를 회복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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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쿠바 54년 만에 국교 회복… 오바마, 외교업적도 챙겼다
입력 2015-07-02 03:12 수정 2015-07-02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