防産비리 1세대 거물, 22년 만에 또 구속될 처지… 합수단 ‘원조 무기중개상’ 정의승씨 사전영장

입력 2015-07-02 02:31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국내 무기중개 업계의 원조격인 ‘1세대 중개상’ 정의승(76) 전 유비엠텍 대표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1일 밝혔다. 합수단은 출범 직후부터 6개월 이상 정씨의 범죄 혐의를 추적해 왔다. 잠수함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씨는 율곡사업 비리로 구속된 지 22년 만에 다시 구속 위기에 놓였다. 합수단은 정씨가 전·현직 군 고위층을 ‘관리’하며 수주 관련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

합수단이 정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국외재산도피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이다. 해외 업체서 받은 무기 중개료를 홍콩 등 페이퍼컴퍼니에 숨겨 1000억원대 재산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정씨는 독일제 잠수함 도입 사업 수주를 사실상 독점하며 중개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 청구 배경에는 군 고위층을 상대로 한 로비 의혹이 자리 잡고 있다. 안기석(64) 전 해군 작전사령관(예비역 중장)은 정씨와 고문 계약을 맺고 해군 현직 장교들에게 청탁을 한 혐의(알선수재)로 최근 구속 기소됐다.

◇정씨 부탁 받고 해군 장교들과 ‘커피숍 회동’=안씨는 전역 후 정씨가 설립한 유비엠텍과 2011년 3월 계약했다. 지난해 3월까지 매달 고문료 500만원을 받았다. 실제 활동은 위법성이 짙은 청탁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1년 10월 블룸버그 등 외신은 ‘독일 엠테유(MTU)사가 정씨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3990만 유로(630억원)를 지급했고, 정씨가 이를 군 관계자 향응에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정씨가 현장실습교육(OJT) 명목으로 한국 해군 장교들을 인도네시아 발리 등 휴양지에 초청했다는 내용이었다.

합수단에 따르면 정씨는 이 보도로 MTU 본사 감사를 받게 됐다. 이에 같은 해 10월 26일 안씨에게 “해군본부 관계자들로부터 OJT에 불법 사항이 없었다는 공식 서한을 받아 달라”며 이 같은 취지의 영문 초안을 건넸다.

안씨는 같은 날 친분 있던 현역 장교들과 접촉했다. 충남 계룡시 해군본부 인근 커피숍에서 당시 해군참모총장 비서실장 신모 대령, 감찰실장 장모 준장, 물자처장 유모 대령을 만나 초안을 건넸다. 신 대령은 다음날 ‘OJT 프로그램에 부정적 요소는 없었다’는 해군 감찰실장 명의 공식문서를 안씨에게 전했다. 정씨는 이를 MTU에 제출했다. 해당 의혹에 대한 군 감찰은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는 2012년 4월 안씨에게 'MTU 감사 관련 공로자 격려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건넸다. 안씨는 별도 고문료를 합쳐 정씨에게서 총 1억7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1970년대부터 활동한 '원조' 무기중개상=정씨는 국내 무기중개 업계에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된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1일 "정씨는 우리나라 무기중개업의 원조격"이라며 "국내 잠수함 도입 사업은 모두 이 사람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씨가 수주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 엔진 제조업체 MTU 및 잠수함 건조업체 하데베(HDW)와의 오랜 파트너 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정씨는 1977년 중령 예편 후 무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해군 시절 탁월한 영어 실력과 사교력으로 해외 무기거래상들이 눈여겨봤다고 한다. 그는 MTU에 스카우트돼 한국지사장으로 근무했다. MTU의 파워팩(엔진+변속기)은 한국군 주요 기동장비에 사용된다. 정씨는 1983년 무기중개 업체 학산실업을 설립하고 HDW와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승승장구하던 정씨는 1993년 건군 이래 최대 방산 비리라는 율곡 비리에 연루됐다. 차세대 구축함 사업에서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3억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1997년 한국해양전략연구소를, 2006년 잠수함 기자재 등을 수입하는 유비엠텍을 설립했다.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유비엠텍의 고문료 2억여원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 끝에 자진 사퇴했다.

합수단은 해군이 2000년대 들어 추진한 214급(1800t급·장보고-Ⅱ) 사업에서 정씨가 불법적인 수수료를 챙긴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사업비가 부풀려졌거나 군이 성능 문제를 눈감아줬을 가능성도 살피고 있다. 214급 잠수함은 연료전지에 치명적 결함이 발견돼 '잠수 못 하는 잠수함'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2019년까지 9척이 도입되는데 HDW의 기술로 제작되고 MTU의 디젤엔진이 장착된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