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한·중·일 시인들 동인지 ‘몬순’ 출간

입력 2015-07-03 02:08
고형렬 시인(왼쪽)과 동인지 ‘몬순’ 한국어판.

‘고형렬 시인과 한국의 시인들이여/ 린망 시인과 중국의 시인들이여/ 대체 몬순은 어디서 불어오나/ 절대로 몬순에 방사성 물질을 실어 보내서는 안 된다/ 몬순은 언제나 신령한 물을 나르게 해야 한다’(일본 시인 스즈키 히사오 ‘몬순의 신령한 물’ 일부)

‘그런데 저 노숙자 당신 나라 노숙자 맞지요/ 우리가 수출한 그 노숙자 그 신발, 그 머리카락’(한국 시인 고형렬 ‘지구의 노숙자, 하늘 시인’ 일부)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의 중견 시인들이 다국적 시동인 ‘몬순(MONSOON)’(문예중앙)을 결성하고, 동인지 창간호를 3국에서 동시 출간했다.

동아시아 시인들의 국제 동인은 처음이다. 창간 멤버는 한국의 고형렬, 김기택, 나희덕, 심보선, 진은영과 중국의 린망, 양커, 진샤오징, 쑤리밍, 선웨이, 일본의 스즈키 히사오, 시바타 산키치, 나무라 요시아키, 사소 겐이치, 나카무라 준이 참여했다. 4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이들은 각 국의 대표적 중견 시인들이다.

한·중·일 시의 앤솔로지(선집·選集)에는 스즈키 히사오, 고형렬의 시처럼 공통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시도 있지만, 한국의 김기택 시인의 ‘김치 항아리’ 같이 자국 문화를 소재로 한 시도 여럿 있다. 도시화가 가져온,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 같은 공통의 정서에 뿌리를 둔 시도 소개된다. 중국 시인 쑤리밍의 ‘힐튼 호텔 중앙홀에서 차를 마시며’가 대표적이다.

‘모르는 사람이 낙엽처럼/ 그대의 좌우에 휘날려도 그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기억의 서랍 속에 아름다운 이름이 가득 장식되어 있는데/ 지금, 내 진실한 마음을 서로 비추는 형제로 누가 있을까?’

앤솔로지에는 시와 함께 이번 동인에 대한 바람 등 각 시인의 산문도 담겼다. 시 동인 결성을 주도한 고형렬 시인은 ‘3국 앤솔로지를 펴내며’라는 글에서 “3국은 지정학적 동시성을 가지면서 독자적인 언어와 역사를 창조해왔다”며 “실패한 과거 규칙에 의한 각축과 불신은 새로운 미래를 열수 없다. 각자의 시가 이웃나라의 시에 높은 형식의 정신과 평화를 선물하는 계절풍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 시인은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유럽에서는 시가 죽었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시적 열정이 강한 지역”이라며 “3국 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핵 문제나 역사적 사건 등 자국의 문제를 시야를 넓혀 아시아적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몽골 등 아시아 다른 나라를 옵서버 국가로 참여시킨다는 계획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